카테고리 없음

유럽에서 옥수수의 전파과정

산들행 2017. 11. 3. 11:30

옥수수는 감자보다 조금 늦게 유럽에 전해졌다. 보급률 역시 감자에 미치지 못했다. 삶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감자에 비해 옥수수는 요즘처럼 개량된 종이 아닌 탓에 딱딱하고 알맹이가 작아서 먹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가루로 만들어 먹으려 해도 새로운 재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리라. 밀로 빵을 만드는 기술은 오래전부터 확립돼 있었고, 제빵사라는 직업도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유럽에서 옥수수가 그 지방 식문화로 정착해 전승된 음식은 루마니아의 머멀거리와 북부 이탈리아의 폴렌타 정도일까.


옥수수가 유럽에 전파된 경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16세기에 지중해 동쪽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발칸 반도로 전해진 듯하다. 옥수수라는 새로운 식물에 대해 알지 못했던 당시 영주와 국가는 옥수수를 소작료 징수대상이라 여기지 않아 세금도 부과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농민들은 자유롭게 수확할 수 있는 새로운 곡물에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고, 옥수수 재배는 동유럽에서  중부 유럽을 흐르는 도나우 강 유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몇몇 지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옥수수도 유럽 전체의 맥류를 중심으로 한 주식 곡물의 아성을 위협하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잡곡 대용식이라는 위치에 머물렀기에 오래도록 잡곡류의 식문화 전통을 이어받은 지역에서는 정착한 반면 맥류로도 부족함이 없던 다른 지역에서는 가축용 사료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유럽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는 대부분 사료용이다.


미국에서는 신대륙으로 건너온 백인들이 원주민으로부터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 생명을 부지했음에도 그 덕분에 살아남은 침략자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원주민들을 내쫓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미합중국은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이 되었다. 북아메리카에서도 그냥 '콘(영어로 곡물이라는 뜻)'이라 하면 옥수수를 가리킬 정도로 중요한 작물이지만, 주식의 왕좌는 콜럼버스가 구대륙에서 가지고 온 밀가루에 내주었다.


그 옛날 원주민들이 신성하게 모시던 작물도 지금은 그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 세계 야채 여행기

- 다마무라 도요오 지음 / 정수윤 옮김

- 펴낸곳 장은문고

- 초판 2쇄 발행 2015년 9월 23일

- p89 ~ 92

세계 야채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