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미의 인기가 오르는 만큼 호남미는 통일쌀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 그 인기가 떨어졌다. 1970년대 호남 지방은 통일벼 재배에 앞장섰고 실질적으로 증산을 선도했지만, 동시에 통일벼가 시장에서 받았던 낮은 평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사실 호남은 한반도에서 으뜸가는 곡창지대였지만, 호남의 살은 예로부터 질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호남은 쌀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지역이었으므로 호남미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원거리 수송되는 일이 잦았다. 근대 이전에는 수확 후 처리와 보관 및 운송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거리로 유통되는 쌀은 산지에서 바로 소비하는 쌀보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면서 호남은 품질은 떨어지지만 값싼 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