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41

'정부미'의 낙인과 호남미의 분투, 품종, 지역 그리고 브랜드

경기미의 인기가 오르는 만큼 호남미는 통일쌀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 그 인기가 떨어졌다. 1970년대 호남 지방은 통일벼 재배에 앞장섰고 실질적으로 증산을 선도했지만, 동시에 통일벼가 시장에서 받았던 낮은 평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사실 호남은 한반도에서 으뜸가는 곡창지대였지만, 호남의 살은 예로부터 질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호남은 쌀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지역이었으므로 호남미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원거리 수송되는 일이 잦았다. 근대 이전에는 수확 후 처리와 보관 및 운송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거리로 유통되는 쌀은 산지에서 바로 소비하는 쌀보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면서 호남은 품질은 떨어지지만 값싼 쌀을 ..

벼, 쌀 2021.09.07

새롭게 창조된 경기미 신화 : 아키바레에 대한 동경과 '임금님 쌀' 전설

1970년대를 거치며 소득 수준이 크게 높아진 대도시 소비자를 중심으로 '경기미'에 대한 수요가 폭팔적으로 늘어났다. 1979년에 이미 부유층이 무공해 쌀을 기준 수매가의 두 배 가까운 가격에 계약재배하여 먹는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개탄조로 보도되기도 했다. 1983년에는 통일쌀이 대부분인 정부미 가격은 떨어지는데도 일반미 가격은 겨우내 30퍼센트 가까이 급등하는 '일반미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반미 선호는 곧 아키바레 선호였고, 아키바레는 경기도에서 특히 널리 재배되고 있었으므로, 일반미 선호는 이내 경기미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과 접목되어 '경기미 열풍'으로 진화해나갔다. '경기미 열풍'은 1980년대 중반 미군부대 상점의 칼로스(Calrose) 유출과 더불어 상류층의 사치를 상징하는 시건으로 언론..

벼, 쌀 2021.09.07

싯다르타와 죽 그리고 깨달음

10여 년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죽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보릿고개를 지낸 그 시대 어르신이 다 그렇듯이 '사흘에 피죽 한 번도 못 먹을 정도'로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뭐라도 먹을거리가 생기면 물을 가득 부어 국 같은 죽을 만들어 가족을 먼저 먹여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전복죽이나 닭죽처럼 호사스러운 죽 앞에서도 '난 밥이 좋다'라며 밥을 고집하셨다. 요즘은 죽이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고 미식가도 즐기는 다양한 맛의 죽이 나오지만, 대체로 예전 어른에게 죽은 그다지 긍정적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쓰는 관용적인 말을 보면 '죽을 쒔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죽도 밥도 아니다'는 식의 부정적 의미가 많다. 한국전쟁을 겪은 비참한 시절의 식생활을 대변하는 ..

벼, 쌀 2020.12.11

권농일 행사

세종대왕이 못해본 게 모내기이다. 모내기는 조선 후기에 남부지방에서 널리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왕은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하여 선농단에서 선농제라는 제를 지낸 후, 친경(親耕 :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 즉 쟁기로 밭을 갈았을 뿐이다. 그리고 설농탕을 먹었다. 광복 후 권농일 행사는 농촌의 모내기를 독려하기 위하여 거행되었다. 원래는 6월 15일인데, 그때는 이때가 모내기철이었다. 비닐 보온못자리가 아닌 냉상 못자리에서 모를 키우던 시절이니 이앙시기도 이때쯤 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벼를 이앙하고 나면 곧 장마라 물댈 걱정이 없는 시기이다. 지금은 5월 넷째주 화요일에 거행한다. 통일벼가 나온 후 비닐 못자리가 보급되면서 이앙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오늘 농업의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는 뜻깊은..

벼, 쌀 2020.05.28

자카르타 집단 의문사와 쌀의 역사

1890년 자카르타 집단 의문사는 ‘이것’ 때문이다 2017-08-03 여강여호 1890년 인도네시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자카르타 집단 의문사였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하던 네덜란드 정부는 자카르타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뚜렷한 의문사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뜻밖에도 집단 의문사의 원인은 22년 후에야 밝혀졌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주식인 쌀이 집단 의문사의 원인이었다. 1912년 폴란드의 생화학자인 카시미르 풍크(Casimir Funk, 1884~1967)는 자카르타가 식민지화되면서 서양의 쌀도정 기계가 들어왔고 기존에 현미를 섭취하던 자카르타인들은 이 쌀도정 기계로 인해 쌀겨를 완전히 없앤 백미만을 섭취했던 게 문제라고 밝혔다. 즉 비타민B의 결핍으로 당시로써는 난치병이었..

벼, 쌀 202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