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식량의 기본적 세가지 곡물은 밀, 옥수수 그리고 쌀이다. 쌀의 90%는 아시아 몬순(계절풍) 지역에서 생산되며, 무려 15억의 인구가 쌀을 주식으로 삼는다. 조와 밀을 주식으로 삼았던 중국인의 선조는 남쪽으로 퍼져 나가 양쯔강 유역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중국문화를 형성하였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기장과 밀을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이 위대한 문명을 형성하였고, 이후 벼농사가 재배 가능한 인도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집약적인 벼농사는 인간의 고된 노동을 요구하지만 풍요로운 수확을 가져다준다. 벼농사는 오랜기간 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인구증가를 부추기면서 필수적으로 엄청남 규모의 군집형태를 이루었다. 벼농사와 채식 위주의 식생활은 농촌지역에서 높은 인구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아시아에서 벼농사로 식량을 해결하는 15억의 인구는, 대다수가 넓게 펼쳐진 들에서 더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농촌에 거주한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벼농사 지역에서는 경작지 1㎢당 1,000여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였다.
다른 곡물과 비교해 볼 때 벼의 장점 중 하나는 물에 잠긴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이다. 줄기에서 뿌리까지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산소를 뿌리에까지 손쉽게 전달된다. 이러한 공기 전달 능력은 보리보다 10배, 옥수수보다 4배 정도 뛰어나다. 수생식물이 아님에도 벼는 메마른 토양만큼이나 침수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이런 적응력 덕택에 처음 경작하는 사람도 계절풍 지역의 빗속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다. 수경 벼농사는 휴경과 윤작이 없어도, 또한 비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만족할 만한 생산량을 보장한다. 벼는 산성토양에도 잘 적응하며, 규석이 많은 것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또한 수경 벼농사는 토양의 질에 따른 변동도 적다.
전통적인 벼농사는 경작방식에서 다른 단작처럼 토양을 혹사시키지 않는다. 10~15세기 동안 벼농사는 외관상 '토양의 혹사' 없이 매년, 심지어 한 해 두번의 수확을 허용해 왔다. 쉬지 않고 경작되는 논 덕택에 벼농사는 곡물 경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질소 20kg 정도면 1,000kg의 쌀을 수확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성과는 매우 놀라운 결과이다. 그 해답은 박테리아와 푸른 해초, 그리고 뿌리에 고착된 질소에 있다. 중국인과 베트남인은 해초와 공생하는 수생 고사리인 물개구리밥을 물에 방출한다. 벼농사 경작방식을 통해 물의 저장이나 비료의 사용에 점차 노하우가 쌓이고, 반복적으로 다져진 논바닥은 물이 스며들거나 흘러들지 않도록 방수 역할을 한다.
농부가 인정하는 벼의 또 다른 장점은 가지가 많고 하나의 씨앗에서 이삭이 많이 생산되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내기는 매우 효과적이다. 모내기는 메마른 경작지에서 잡초로 부터 벼를 보호한다. 다른 곡물과는 다른, 모내기의 근본적 장점은 훨씬 짧은 기간 동안 논을 사용하며 1년에 2~3번의 수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지막히 비탈에 햇빛을 반사하며 찰랑이는 물로 가득 찬 다랑논들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손길로 일구어온 벼농사의 경관은 도시나 사원, 왕궁의 유적과는 또 다른 경이감을 선사할 것이다. 경이감만이 아니다. 이 경관을 통해 인류는 정착하여 예술과 문학을 꽃피우고 문명을 진전시켜 왔다.
- 쌀과 문명 - 피에르 구루 지음 / 김길훈 김건 옮김 - (주) 푸른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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