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밥에 숨겨진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

산들행 2017. 11. 26. 17:38

한반도의 온 역사 동안 국가나 왕실은 벼농사 짓는 농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쌀밥을 먹으려고 양자강에서 황하강을 잇는 운하는 파기까지 했습니다. 남방 사람이었던 명나라의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북경(지금의 베이징)에서 황제가 되었는데. 남방의 쌀을 먹고 싶어서 양자강에서 나는 쌀을 북경까지 수송하기 위해 운하는 건설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예요. 쌀밥에 대한 욕구가 한국의 역사를 가져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을 많이 먹기로 유명했습니다. 조선 중기 학자 오희문(1539~1613)은 임진왜란 때 써내려간 일기인 『쇄미록』을 남겼습니다. 그 기록을 보면, 전쟁 시기임에도 한 끼에 7홉의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7홉은 420g에 버금가는 양이에요. 지금으로 치면 세 끼에 걸쳐 먹는 쌀을 한 번에 먹었다는 말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식(多食)에 힘쓰는 것은 천하에서 으뜸이다. 최근 표류되어 유구(琉球, 현재의 오키나와)에 간 자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백성들이 너희들의 풍속은 항상 큰 주발과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실컷 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웃었다고 한다."


적게 먹어서 자연과 일치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익은 식소(食少), 즉 적게 먹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19세기 말 한반도에 왔던 프랑스 선교사 역시 당시 조선 사람들을 두고 '아시아의 대식가'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은 왜 밥을 많이 먹었을까요? 가난했기 때문에 밥을 많이 먹었다? 쌀밥을 많이 먹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쌀밥을 많이 먹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것이 더 강력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벼농사 짓는 것에 투자를 많이 한 거예요. 쌀 생산에만 집중하니까 돈이 되는 다른 사업에 소홀했던 겁니다. 당시 성리학자들은 자기 문중을 위주로 작은 공동체에서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국가의 경제적인 측면에 대해서 고민은 많이 했어도 실천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유학의 조상 제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생전에 잡수시던 그대로 제사상을 차리는 격식은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정리한 책으로 알려진 『가례(家禮)』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자의 『가례』에서도  조상 제사에 올리는 중요한 제물 중에서 주식으로 반(飯, 밥), 탕 그리고 면을 꼽았어요. 문제는 한반도에서는 밀농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결국 밥의 재료 중에서 쌀에 집중하여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성리학의 이데올로기가 있었습니다. 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조선시대 후기 세금도 쌀로 내게 한 대동법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쌀은 조상을 뜻하기도 하는데, 제사를 올릴 때 밥이 꼭 중심에 올라가죠. 쌀밥을 올릴 수 없는 가난한 장남은 조상을 표시하는 위패를 가슴에 넣고, 쌀을 파는 싸전에서 혼자 가서 "아버지 쌀밥 많이 잡수세요"하고 절을 두 번 올렸다고 합니다. 조상은 쌀밥으로 모셔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한반도에서 산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종교 중의 하나인 무속에서도 밥은 중요했습니다. 죽은 조상의 혼령을 모시는 굿을 할 때 쌀밥이 중심에 놓여요. 지금은 사라진 민간신앙인데, 50년 전만 해도 햅쌀을 흰 함지에 싸서 대들보에 묶어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햅쌀은 집안을 지켜주는 가장 큰 신인 성주신령을 상징하거든요. 민간신앙, 샤머니즘, 무속에서도 쌀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이렇듯 쌀은 조상이면서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이에요. 심지어 일제시기 만주로 가는 사람들이 쌀밥을 먹으려고 볍씨를 들고 갔을 정도입니다.


왜 쌀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을까요? 보리는 거칠어서 꼭꼭 씹어야 하지만, 쌀밥은 그렇지 않아요. 또 쌀밥은 전분이 호화되어 소화가 잘되고 맛이 좋습니다. 그런 쌀이 풍족한 적이 없었고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쌀밥을 먹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강했기에 많이 생산해야 했죠. 보리밥은 춘궁기나 보릿고개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밥이었지 먹고 싶은 밥은 아니었습니다.


- 세상을 담는 밥 한그릇

  (밥에 숨겨진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 / 주영하) 

- 지은이 주영하, 송기호, 문성희, 이명원, 박성준, 정대영, 김은진

- 펴낸곳 : 궁리출판

- 1판 1쇄 펴냄 2013년 1월 25일

- p33 ~ 36

세상을 담은 밥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