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쌀 현미의 독 피틴산, 발아현미와 조상의 슬기

산들행 2017. 9. 5. 06:59

쌀에도 독이 있다. 천적인 새를 쫓기 위해 벼 알곡이 독을 품은 것이다. 인류는 천 년 동안 벼를 개량했지만 독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였다.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철분을 파괴하여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물질인 피틴산酸 때문인데, 주로 씨눈에 들어 있다. 그래서 벼를 빻아 겉껍질인 왕겨를  벗긴 뒤, 속껍질인 쌀알 표피를 다시 갈아낸다. 쌀의 표피를 갈아내는 과정에서 씨눈이 제거되고 쌀알은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 먹기 좋게 된다. 이렇게 가공한 쌀이 도정미搗精米 또는 백미라고 부르는 흰쌀이다.


한편 겨만 벗기고 씨눈이 붙어 있는 쌀은 현미이다. 씨눈에는 이듬해 봄에 싹을 내기 위해 저장해둔 영양소가 풍부하며, 특히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현미를 매끼 먹으면 피틴산을 과다 섭취하게 되어 좋지 않다. 현미의 부작용을 개선한 게 발아현미이다. 현미의 씨눈이 발아하면 피틴산은 인燐과 이노시톨로 바뀐다. 인은 인체의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유전인자DNA 생성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 영양소이다. 이노시톨은 비타민 B군의 일종으로 유·소아 발육을 돕고, 특히 탈모증 치료에 효험이 있는 생체활성물질이다.


도정 기술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는 현미를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씨눈의 피틴산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추수한 볏단을 우선 통째로 쌓아 건조시킨 뒤 겨만 벗겨 먹었다. 건조되는 동안 자연스레 현미의 씨눈이 트고 발아현미로 변하는 것이다. 선조의 슬기이다.


<중략>

모든 식물의 독성도 마찬가지이다. 의약품과 먹거리가 근원이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약리성분을 일컬어 이차대사산물이라 한다. 식물이 생장하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광합성으로 얻은 탄수화물로 대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필수 부산물이다. 식물과 미생물에서만 나타나는 매우 특이한 생리물질이다. 특정 기관에서 생성 분비하지 않고 필요한 부위의 세포 내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무쌍한 성질의 물질이다. 식물과 미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 환경을 살피고 대응해야 할 필요에서 이런 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환경과 대상에 따리 기능도 각양각색이다. 한 개체에서는 생장에 필요한 호르몬으로, 같은 종의 생물 간에는 유혹하는 물질로 작용한다. 반면 다른 종의 생물에게는 친구냐 적이냐에 따라 독소 또는 유인 물질로 작용한다. 심지어 주변에 경쟁 식물이 들어서면, 생장을 방해하는 타감작용이나 번식을 교란하는 변태 호르몬으로도 작용한다. 이처럼 주변 환경의 변화를 시시각각으로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기능 때문에 정보화학물질이라 부르기도 한다. 식물의 이차대사물질은 현대인류의 정보전과 화생방전을 무색하게 한다.



- 식물의 인문학

- 박중한 지음

- 펴낸곳 (주) 도서출판 한길사

- 제1판제2쇄 2015년 1월 13일

- p110~112, 113~115

식물의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