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밥풀 한 알의 여백

산들행 2017. 11. 19. 21:51

밥풀        - 권영상 -

 

밥상을 들고 나간 자리에

밥풀 하나가 오도마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바깥을 나가려든 참에 다시 되돌아 보아도

밥풀은 흰 성자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바쁜 발걸음 아래에서도 발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밟히면 그 순간 으깨어지고 마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 없이

이 아침, 분주한 방바닥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이 어린 성자의 얼굴로

 

권영상의 시로 하여 밥풀 한 알도 삶의 자리에 얼마나 큰 여백을 만들어 주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시의 눈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을 넉넉한 마음의 공간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그렇게 크게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이지요. 마음을 바깥에다 두지 않고 안에다 두는 사람, 혼자서 뺑소니치듯 달리지 않고 옆 사람과 어깨를 겯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 물질적인 욕망에 기울지 않고 자연의 평형을 정관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지요.


- 시, 세상에 말을 걸다.

- 지은이 윤성희

- 펴낸곳 새미

- p104-108

 

 

방바닥에 떨어진 밥풀 한 알에서 성자의 모습을 발견한 시인의 예리한 감성과 통찰에 감탄하면서 이 시를 읽으면 내 마음이 따뜻하고 차분해진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마칠 때 이 시를 한 번씩 읽어보며 새해를 보내고 싶다. 다른 이의 모습에서 '성자'를 볼 수 있는 사랑의 지혜를 구하고, 바쁨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즐길 수 있는 수행자의 마음을 새롭게 해준다. '밥풀'이란 이 시는.          <이해인>

 

- 나를 흔드는 시 한 줄

- 정재숙 엮음

- 펴낸곳 중앙북스(주)

- 초판 2쇄 발행 2015년 3월 2일

- p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