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밀, 기타 맥류 136

조선시대 국수는 밀가루가 아닌 메밀가루로 칼국수를 만들었다

조선시대에 국수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세종실록》이다. 수륙재 때에 공양 음식으로 정면 淨麵을 올리고 있다. 이 정면의 재료는 메밀이었을 것이다. 한편 국수 조리법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문헌은 《음식지미방》인데, 여기에는 다양한 국수가 소개되고 있다. 메밀가루로 된 면, 녹말로 만든 사면 絲麵, 밀가루로 만든 난면 卵麵이 그것인데,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국수의 재료로 메밀가루·녹말·밀가루가 사용되고 있었다. 메밀국수·녹말국수·밀국수 중에서 귀한 국수는 밀국수였고, 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국수는 메밀국수였으며, 다음은 녹말국수였다. 밀가루는 중국의 화북에서 수입해왔기 때문에 진말 眞末이라 불렀다. 그리고 성례 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할 귀한 식품 중의 ..

냉면, 그 기묘한 음식, 국수와 젓가락 문화

냉면, 그 기묘한 음식 [물에 관한 알쓸신잡]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371046632392880&mediaCodeNo=257&OutLnkChk=Y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시인인 백석이 1941년 발표한 시의 일부 구절입니다. 시인이 그토록 반가워했던 이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백석 시인이 겨울밤 동치미국과 잘 어울린다고 했던 음식은 바로 냉면입니다. 당시에는 냉면도 국수라고 했기 때문에 글에서는 냉면을 말하고 있지만 시의 제목은 ‘국수’입니다...

분식의 두 모습 : 쌀의 열등한 대체품인가, 서구 문화의 총아인가

1980년대 초까지는 없어서 못 먹던 쌀을 양껏 먹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면 그 뒤에는 쌀에 대한 갈망을 풀었으니 다른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이와 같은 욕구의 다변화는 국민소득의 성장과 더불어 그 속도가 빨라졌다. 이렇게 쌀이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밀의 위상도 서서히 변화해왔다. 밀에 대한 기억은 크게 두 갈래로 형성되어 나갔다. 한편으로는 쌀의 열등한 대체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쌀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범주인 '양식'으로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자기 자리를 점해나갔다. 한반도에 자생 밀은 있었다. 뒷날 멕시코와 인도의 녹색혁명을 이끈 '난쟁이 밀'의 육종 재료로 노먼 볼로그가 이용한 반왜성 밀 '노린(農林10호'는 일제강점기 수집된 한반도 '앉은뱅..

노만 보로그의 노벨 평화상과 세계식량상

1970년 12월 10일 보로그 박사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평화상위원회의 의장이 노만 보로그 박사가 "밀의 녹병과 싸우고 개발도상국의 관료주의와 투쟁하여온 불굴의 전사이며, 우리 시대의 다른 어떤 사람보다 굶주리는 세계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빵을 주었고,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킨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수상연설에서 보로그 박사는 이 상은 한 사람의 과학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전세계에서 굶주림과 싸우고 있는 전사들에게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녹색혁명은 아직 식량이라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구가 너무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식량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도덕상의 권리이며 사회정의의 실현과 인류의 평화를 약속하는 근본이다. 인..

빵의 보급과 설탕의 소비 확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설탕이 단맛의 주요 공급원이 된 것은 20세이후이다. 저렴한 단맛으로는 찹쌀이나 멥쌀 혹은 조 등 곡물에 엿기름을 섞어 조청이나 갱엿 등이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식혀도 굳지 않는 조청은 대표적인 전통 감미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에 설탕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일본의 동남아 식민지로부터의 설탕 재배와 제당산업의 발전과 깊이 관련된다. 특히 일본의 소비시장이 팽창하여 제과산업, 빙과산업, 식품산업 등이 발달하면서 설탕의 소비가 급증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 동안 한반도에서도 제과산업과 빙과산업이 발달했고, 이는 설탕 소비의 증가로 이어졌다. 소위'아이스케끼'라고 불리는 얼음과자가 널리 퍼졌다. 1930년대 소형 동력기를 이용해서 만든 1전짜리 아이스케끼가 등장하면..

명화로 본 밀의 일대기, 밀밭, 수확, 추수, 이삭줍기, 빵, 기도하는 노인 등

1. 쟁기질 이카루스의 추락 /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 / 1560년경 / 벨기에 은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브뤼헐이 그린 명화이다. 자유를 찾아 해를 향해 날아오르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내려 바닷속으로 추락하고 마는 이카루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밀 재배와는 관련이 전혀 없지만 쟁기질 하는 그림을 차용했다. 그랜드 우드(Grant Wood, 1891~1942) / 가을 갈이(Fall Plowing) / 1931년 / 미국 2. 파종 씨 뿌리는 사람 /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 / 1850년경 / 프랑스 에서 건강한 체구의 농부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역동적인 자세와 노동의 고..

고전속의 보리와 관련된 노래와 시, 보리타작, 보리베기, 보리씨 뿌리기

보리타작하는 것을 보며[觀打麥] - 이승소 - 보리밭에 수확 철 되니 더운 기운 맑아지고, 누렇게 익은 보리 베어 나르노라 어깨가 붉게 탔네. 밭에 있던 보리 날라다가 낟가리 쌓아놓고, 마당을 손바닥처럼 평평하게 쓸었다. 편을 갈라 마주 선 사람 모두 웃통 벗고서는, 소리치며 동작을 맞춰 힘차게 내려치네. 그대여 일 년간의 즐거운 일 모름지기 기억하라, 이로부터 온갖 곡식 익어 차례로 풍년 되리. 李承召(1422~1484, 三灘集) 麥壟秋生暑氣淸, 黃雲割盡擔肩頳. 已將棲畝如梁積, 且復除場似掌平. 對立分曹皆袒裼, 急呼齊擊太猩獰. 一年樂事君須記, 從此嘉生次第成. • 黃雲…: 누렇게 익은 벼나 보리를 표현하는 시어이다. 猩獰: 모질게, 거칠게. 보리 베기 노래[刈麥行] - 성현 - 못에는 어둑어둑하게 갈대가 ..

쌀 이외에 보리, 밀 , 콩, 옥수수 등 모든 곡물은 잡곡일 뿐이다.

인간이 재배하는 여러 농작물 중 곡물은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매우 중요한 작물이다.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주로 재배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곡물은 다른 어떤 작물보다도 중요시 되는 작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이러한 곡물 사이에도 엄연한 신분 차이가 존재한다. 맨 윗자리는 벼와 보리가 차지하고 있는데 이 둘은 밥을 지을 수 있는 곡물이다. 둘 중에서 으뜸은 벼이고 부족할 때 보리를 섞는다. 밀은 가루를 내어 가공을 하니 밥이 될 수 없고 다른 것들은 밥을 지을 때 섞을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밥을 짓지는 않는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일컬을 때 '숙맥 菽麥' 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콩 菽'과 '보리 麥'인데 콩인지 보리인지 분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언급된 농업혁명 속 밀 이야기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마지막으로 호주와 미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대략 1만 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갔다. 이런 작업을 하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곡물 경작에 더 많은 노력이 집중되면서 야생 동식물을 사냥하고 채집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수렵채집인은 농부가 되었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인류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 시작은 느렸고 지리적으로..

인류에게 농경술을 가르쳐준 신 데메테르, 널리 퍼뜨린 트리프톨레모스

대지의 생산력이 의인화된 존재 데메테르 농경의 신으로서 데메테르가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농경기술이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데메테르(로마신화에서는 세레스 ceres)는 트리프톨레모스에게 곡물 씨앗도 주고 곡물 재배 기술도 가르쳐주었다. 트리프톨레모스는 이 경작술을 온 세상에 전했다. 이처럼 인류에게 농경술을 알려준 존재이다보니 화가들은 데메테르를 형상화할 때 그녀의 머리에 곧잘 밀 이삭으로 만든 관을 씌워주었고, 손에 곡물과 횃불 혹은 낫을 들려주었다. 그런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 그녀를 찬미했고 감사를 표했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가 장앙투안 바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의 「데메테르(여름)」에서 우리는 그 전형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