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생산력이 의인화된 존재 데메테르
농경의 신으로서 데메테르가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농경기술이었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데메테르(로마신화에서는 세레스 ceres)는 트리프톨레모스에게 곡물 씨앗도 주고 곡물 재배 기술도 가르쳐주었다. 트리프톨레모스는 이 경작술을 온 세상에 전했다. 이처럼 인류에게 농경술을 알려준 존재이다보니 화가들은 데메테르를 형상화할 때 그녀의 머리에 곧잘 밀 이삭으로 만든 관을 씌워주었고, 손에 곡물과 횃불 혹은 낫을 들려주었다. 그런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 그녀를 찬미했고 감사를 표했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가 장앙투안 바토(Jean-Antoine Watteau, 1684~1721)의 「데메테르(여름)」에서 우리는 그 전형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흰 옷을 입은 데메테르는 머리에 양귀비와 수레국화, 밀 이삭으로 꾸민 관을 썼고 손에는 낫을 들었다. 그녀의 오른쪽, 그러니까 화면 왼편에는 가재와 사자가 보이는데, 이는 황도대의 게 자리와 사자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두 별자리는 시기적으로 6월 말~8월 말의 기간을 나타내므로, 그림의 계절은 여름, 곧 밀을 수확하는 때임을 시사한다. 이 계절을 맞아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다면 그 모두가 데메테르 덕분이다. 그렇게 넉넉한 소출을 얻고도 신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진정 배은망덕한 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에 경작술을 퍼뜨린 트리프톨레모스(로마신화에서는 프로세르피나)
데메테르는 트리프톨레모스에게 쟁기 쓰는 법, 씨 뿌리는 법 등 중요한 농사법을 가르쳐주었다. 또 용이 끄는 전차를 내주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인류에게 농업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베풀게 했다. 그 덕에 많은 나라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줄 알게 되었고 훨씬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화가 루이장프랑수아 라그르네(Louis-Jean-francois Lagrenee, 1725~1805)의 「데메테르(농업)」는 데메테르가 트리프톨레모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에서 트리프톨레모스는 왕관을 쓰고 있다. 엘레우시스의 왕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데메테르의 가르침 덕에 이제 들판은 황금물결을 이뤘고, 추수를 끝낸 사람들은 풍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농경술이 얼마나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그림이다.
신화에 따르면 트리프톨레모스는 온 세상에 농경술을 전파하고 돌아온 뒤 엘레우시스에 멋진 신전을 건립하고 이를 데메테르에게 바쳐 비교(秘敎)를 창시했다. 바로 엘레우시스 비의(秘儀)다. 농경의 신이다보니 데메테르는 계절의 순환과 그에 따른 생장과 사멸, 재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으로 여겨졌다. 어두운 땅속으로 사라진 씨앗이 새싹을 틔워 새로운 생명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사의요, 신비였다. 이를 주재하는 신이 데메테르이다보니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사후 세계와 영생에 대한 비밀과 구원의 길을 깨우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열망과 기대를 바탕으로 엘레우시스 비의가 성장했다.
폴랑드로 화가 얀 밀(Jan Miel)은 1645년에 「데메테르, 디오니소스, 아프로디테」를 그렸다. 풍요의 상징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삼신 주제화'이다. 그림을 보면 아프로디테가 디오니소스와 데메테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신에게 친근감을 표시한다. 우리 셋만 힘을 합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섬기고 따를 것이라는 확신에 찬 속삭임을 들려주는 듯하다. 먹고 마시는 것 모두 농사의 결실이고 풍요는 무엇보다 등 따시고 배부른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참고로 디오니소스는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술의 발견자이다.
- 신화의 미술관, 올림포스 신과 그 상징편
- 이주현 지음
- 펴낸곳 (주) 아트북스
- 1판 2쇄 2020년 8월 7일
- p12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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