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하얀 이밥은 독과 한국인의 대표 에너지 쌀이라는 광고

산들행 2019. 3. 22. 16:13

벼농사가 한반도에 전해된 이래 벼는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다. 가장 사랑했고 가장 귀히 여겼지만, 동시에 가장 모자랐고 가장 배불리 먹기 어려웠던 것이 벼였다. 가장 가깝게 여겼으나 실제로는 가장 멀리 있었기에, 한국인은 더 많은 쌀을 얻고자 수천년 동안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1935년 《동아일보》기사는 "하얀 이밥이 독이 됩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하얀 이밥이 독"이 된다는 주장은 악의적인 왜곡에 가깝다. 이는 전쟁 준비를 위해 쌀의 수탈을 강화하던 일제가 각기병에 대한 의학 지식을 교묘히 비틀어 마치 보리나 밀이 쌀보다 몸에 좋다는 식으로 선전한 것이었다. 이 선전이 1960~70년대 한국에 다시 나타났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말부터 뒤로는 한국전쟁까지 이어지는 굶주림의 경험은 한국 민중들에게 쌀에 대한 염원을 강하게 각인시켰고. 혼분식에 대한 원초적 기억을 형성하기도 했다.


한편, 2000년대의 공익광고를 정반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한국인의 대표 에너지, 쌀"이라는 제목의 공익광고는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선 학생과 직장인들의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고, 뒤이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윤기 어린 흰쌀밥을 보여주면서 아침식사를, 그것도 빵이나 시리얼 같은 것이 아니라 흰쌀밥으로 든든히 먹고 하루를 시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론 아침식사가 영양학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이 된다던 흰쌀밥을 몇 십년 만에 건강한 아침식사의 대표 이미지로 내세우게 된 곡절을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되돌릴 수 없을 듯하다. 이와 같은 식생활의 변화 앞에서 쌀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미 공익광고 등에서는 쌀의 영양학적 가치를 홍보하고 쌀밥을 많이 먹을 것을 권장하는 이야기가 넘치고 있다. 이런 서사에는 '신토불이'로 대표되는 쌀에 대한 민족주의적 기억이 가득 담겨 있는데, 사실 이러한 민족주의적 기억과 애착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갖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만들어 주입되고 있는 것에 가깝다. 한편, 불과 30년 전에만 해도 백미의 해로움을 강조하고 혼식과 분식의 영양학적 장점에 대해 홍보하는 서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 서사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이들이 갖고 있는 밥에 대한 기억은 "한국인의 대표 에너지, 쌀"과 같은 공익광고에서 순백의 갓 지은 밥을 서슴없이 보여주는 것과도 국지적으로 충돌한다.


"한국의 녹색혁명"을 통해 만성적인 쌀 부족을 벗어난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은 쌀이 모자랐던 시절 흰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1970년대에 흰쌀밥만 찾는 것은 사치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국가 시책을 생각지 않는 이기적인 행위였으며, 자신의 건강을 망치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남아도는 쌀을 처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논을 놀려두고 벼농사를 짓지 않으면 국가에서 보상을 해주며, 대중매체에서는 쌀의 영양을 강조하며 쌀을 많이 먹자고 연일 광고를 하고 있다. 앞으로 쌀에 대해, 밥에 대해 어떤 기억들이 새롭게 구성될 것인지는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쌀을 만들고, 쌀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 쌀은 인간의 외부에 자연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쌀의 역사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왔으며 또한 그것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

- 김태호 지음

- 도서출판 들녘

- 초판 1쇄 발행일 2017년 4월 25일

- p269~275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한국의 과학과 문명 10)(양장본 Hard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