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자카르타 집단 의문사는 ‘이것’ 때문이다
2017-08-03 여강여호
1890년 인도네시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자카르타 집단 의문사였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하던 네덜란드 정부는 자카르타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뚜렷한 의문사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뜻밖에도 집단 의문사의 원인은 22년 후에야 밝혀졌다. 인도네시아인들의 주식인 쌀이 집단 의문사의 원인이었다.
1912년 폴란드의 생화학자인 카시미르 풍크(Casimir Funk, 1884~1967)는 자카르타가 식민지화되면서 서양의 쌀도정 기계가 들어왔고 기존에 현미를 섭취하던 자카르타인들은 이 쌀도정 기계로 인해 쌀겨를 완전히 없앤 백미만을 섭취했던 게 문제라고 밝혔다. 즉 비타민B의 결핍으로 당시로써는 난치병이었던 각기병에 의한 집단 의문사였다는 것이다. 풍크에 의해 처음 발견된 비타민(Vitamin)은 ‘생명에 필요한 아민’이라는 뜻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주류학계의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도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백미가 아닌 현미가 권장되고 있으니 비타민의 발견은 의학계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이 틀림없다. 우리가 흔히 먹는 백미는 현미를 도정해 쌀겨층과 씨눈을 완전히 제거한 뒤 배젖 부분만을 남긴 쌀을 말한다. 쌀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주식으로 사용할 만큼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곡물 중 하나다. 쌀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가 풍부해 인간이 섭취하는 열량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4천 년 전부터 재배해 온 주요 식량 작물로 국민 1인당 섭취하는 총열량의 40% 정도를 쌀에서 얻는다고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듯이 오랜 세월 인류의 주식 중 하나였던 쌀은 다양한 신화와 전설을 가진 곡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서도 환웅이 하늘에서 데려온 우사, 운사, 풍백은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농경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농촌진흥청이 전국 마을들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통해 소득원 창출을 꾀하는 ‘구전자원을 활용한 소득화 시범사업’에도 쌀에 얽힌 전설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 태백시 구문소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로 옛날 가난한 나무꾼이 아픈 아들을 위해 구문소(求門沼, 구멍이 있는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가 물에 빠졌다. 용궁으로 잡혀간 나무꾼은 용왕으로부터 왜 불쌍한 물고기를 잡느냐며 호된 질책을 당했는데 나무꾼의 사연을 듣고 용왕은 떡 한 덩어리를 주어 다시 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으로 오는 사이 떡은 딱딱해져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실망한 나무꾼은 떡을 쌀독에 넣어뒀는데 이 쌀독에서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느 동네를 가도 들을 수 있을법한 전설이지만, 그만큼 쌀은 우리 생활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화에서는 쌀의 유래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신화 속 쌀의 유래를 살펴보기 전에 쌀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를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충남 부여군 미암사에는 ‘쌀바위’라는 높이 30m의 거대한 바위가 있다고 한다. 쌀바위에 얽힌 전설은 대강 이렇다. 한 노인이 집안의 대를 이을 손자를 얻기 위해 절을 찾아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어느 날 노인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호리병에서 쌀 세 톨을 꺼내 주면서 이 쌀을 바위에 심으면 끼니때마다 먹을 쌀이 나올 것이라고 했단다. 아니나 다를까. 꿈에서 깨어난 노인이 관세음보살이 말한 바위로 가보니 실제로 끼니때마다 먹을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좀 더 파격적인 결말이 필요하니 말이다. 욕심이 화근이었다. 하루 세끼 먹을 쌀만으로도 감지덕지했어야 할 노인은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바위 구멍을 후벼 팠다고 한다. 욕심 많은 노인에게 더 이상 쌀이 쏟아져 나올 리가 없었다. 바위 구멍에서는 쌀 대신 핏물이 흘러나와 바위 주변을 핏빛으로 적셔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쌀바위 전설에 관세음보살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신화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인류에게 최초로 쌀을 가져다준 신으로 알려졌다. 물론 관세음보살이 불교에 등장하는 신이기는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는 자연스레 중국 신화의 일부로 편입돼 오늘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한편 수련 속에서 태어난 관세음보살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살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 열반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국 신화에서 전하는 쌀의 유래는 이렇다.
태초에도 벼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이삭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렵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접어들 즘 인간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곤란을 겪게 되는데 이를 지켜본 관세음보살은 인간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마음먹고 벼가 자라는 논으로 가서 자신의 젖을 짜 벼에 흘러내리게 했다고 한다. 벼에 이삭이 패기 시작하자 관세음보살은 이삭이 더 많이 패게 하려고 더 힘을 주어 젖을 짰는데 이때 젖과 함께 피가 섞여 나왔다고 한다. 결국 관세음보살의 젖을 받은 벼에는 백미가, 젖과 피를 같이 받은 벼에는 흑미가 생겼다고 한다. 쌀의 영양소가 풍부한 것도 관세음보살의 젖과 자비 때문일 것이다.
중국 신화의 또 다른 문헌에 따르면 쌀은 인류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을 같이해온 개의 선물이라고도 한다. 신화에 따르면 홍수로 땅에는 모든 식물이 다 사라져 버렸는데 우 임금이 이 홍수를 멈추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홍수가 멈춘 땅에 식물은 새로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인간은 사냥을 통해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꼬리에 노랗게 영근 이삭 다발을 달고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이삭을 논에 심었는데 여기서 벼가 생겨났다고 한다. 예로부터 식사를 할 때 개에게 따로 밥을 챙겨주는 것도 다 개의 선물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이다.
요즘에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싶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는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편 정부의 쌀 재고는 소비감소와 의무 수입량, 대북지원 중단이 겹치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 해마다 수천억 원의 재고 관리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오랜 세월 우리의 주식이었던 쌀이 애물단지가 돼버린 것이다. 격세지감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과 정부의 남아도는 쌀 사이에 놓인 간극이 너무도 슬프고 아프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현재 국내 1인당 쌀 소비량이 하루에 밥 한 공기를 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 쌀 소비 감소의 가장 원인이 아닐까 싶다. 또 육식 위주의 서구식 식생활이 보편화된 것도 쌀 소비 감소를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쌀의 주요 영양소인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의 적으로 알려지면서 쌀 소비 감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살이 찌는 이유가 꼭 쌀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밥심'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심'으로 살아간다. 잘 먹으면서 아니 세끼 꼬박꼬박 챙기면서 살을 빼는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탄수화물에 대한 지나친 걱정과 불안이 오히려 정상적인 다이어트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외면받고 있는 쌀이지만 우리 주식 쌀은 신의 선물이었다.
http://www.ziksir.com/ziksir/view/4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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