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술을 잘 빚게 된 것은 순전히 시집을 ‘잘못 온’ 탓이다.
그녀는 21세에 시집을 왔다. 청양 지방으로 갈래를 친 하동 정씨 종갓집이었다. 일도 많았지만, 20대에 혼자가 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혹심했다. 새벽 3시에 눈을 뜨면 혹시나 다시 잠이 들까 봐 물을 데우고 밥할 준비를 하면서 아궁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졸았다. 시어머니는 조금만 몸이 아파도 아들을 곁에 두고 자야 했다. 아들을 빼앗아간 며느리가 미웠던가 보다. 그래서 그녀는 시어머니가 잠들기 전까지는 남편과 한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도란도란 남편과 얘기라도 나누면 이튿날 시어머니 심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시키려고 큰손녀에게 젓가락 한짝 밥상에 놓지 못하게 했다. 소낙비가 내려도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 시어머니가 술을 좋아했다. 시집을 오자마자 그녀에게 술을 빚으라고 했다. 그녀는 지청구 안 들으려고, 친정에서 어깨 너머로 본 눈썰미로 술을 빚었다. 술은 남편도 좋아했다. 남편은 술을 등에 지고는 못 가도 뱃속에는 넣고 가는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한두 대접 마시기 시작해 점심때면 남이 되어 버렸다. 시어머니는 술에 취하면 밭에 가 드러눕거나 길에 드러누웠다. 집에서 술을 마시면 하다못해 마당에다가 밥그릇 하나라도 엎어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이 모자(母子)의 술을 끊이지 않고 대느라 보름에 한 번씩은 술을 빚었다. 그러다 세무서 직원이라도 들이닥치는 날이면, 술잔은 내버려두고 술병을 들고 뒤 안으로 달아났다. 세무서 직원이 구둣발로 안방에 들어와 술병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면, 그녀는 “그래 나는 벌금 안 내려고 술병을 감췄다. 그렇지만 너희는 남의 집 안방에 구두 신고 들어오는 법이 어딨냐”며 맞받아 소리쳤다. 동네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뒷배가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당당한지 모르겠다며 수군댔다. 그런 감시를 받으면서도, 술을 끊이지 않고 빚은 덕에 그녀의 술 빚는 실력은 나날이 늘었다. 그 소문이 인근에 퍼져, 그녀는 잔칫집에 초대를 받았다. 술밥을 다 쪄놓고, 구기자를 준비하면 그녀가 가서 누룩과 물을 잡아서 술밥과 함께 비비는 일을 했다. 그녀는 술독이 크든 작든, 한번 휘휘 저어보면 술이 잘 될 것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전통술 명인 지정을 받았고,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녀가 술을 잘 빚게 된 것은 순전히 시집을 ‘잘못 온’ 탓이다.
“이 집이 하동 정씨(河東 鄭氏) 종가집이다 보닝께 큰일 쩍마다 쓰려고 가양주로 담가 먹었지. 민속주는 무슨… 열아홉에 혼자된 시엄니헌티 부지깽이로 맞아가며 된 시집살이 했지. 시집오자마자 시어머니가 술을 빚으라고 하시는데 어디 제대로 가르쳐 주기나 하나. 그래야 트집 잡아 혼낼 꺼 아닌가배. 참 기막힌 세상이었지. 지청구도 많이 듣고 곰방대로 맞아가며 어깨 너머로 배우는데 몇 년이 걸렸지.”
- 출처 : 넷워크 뉴스플레이션
- 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
- 글 허시명
- 펴낸곳 : (주)웅진닷컴
- 2001년 9월 20일 초판 1쇄 발행
- p100 ~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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