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이문구 소설속의 기우제

산들행 2013. 6. 18. 11:18

날이 오래 가물다 보면 논밭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밭도 가뭄을 탄다.

 

고대성 : 정부서 먼첨 국비루 지내구, 도지사는 도비루 지내구, 시장군수는 시비 군비루 지내구, 읍면장두 공금으루 지내는 게 기우젠디. 성님은 도대체 그간 어디서 살다 오신규? 워디서 살다 오셨간 소식이 이냥 짐일생이 죽은 평양이신겨. 아이구 어두워 성님~. 박통 때도 지내구, 전통 때두 지내구. 노통 때두 농수산부 농진청 같은 정부기관이 솔선했던 게 기우젠규. 아슈?

 

신길섭 : 아 쓸 디다가 안 쓰구서. 참 쓰면 안 되는 디다 몰래 쓴 모이를 파서 참 안 오던 비를 오게 헌 예야 왜 한두 군디서만 있었간디유.

 

전풍식 : 가물면 넘의 무덤 한 장만 몰래 파면 되는디 천문학 기상학 따위가 무슨 쇠용 있을겨. 넘의 모이만 몰래 파내면 안 오던 비두 좍좍 오잖던감. 큰물이 가거나, 물마가 져서 논밭이 몽땅 쓸린 때두 유식헌 늠덜끼리 작당해 가서 넘의 모이 한 장만 몰래 파내면 날이 들구, 태평양서버텀 쳐밀어오는 태풍두 넘의 모이 한 장만 몰래 파내면 태풍이 자구, 시베리아에서버텀 쳐내려오는 북풍 설한두 넘의 모이만 한 장 몰래 파내뜨리면 바루 봄바람으루 번허는 최첨단 시대여.


풍근이 : 말이야 바른 말이지 뭐. 누구는 이 국제화 시대에 장사 지내구, 지사 지내구, 고사 지내구, 기우제 지내구 허는 게 다 뭣 말러비틀어진 거냐구 허겄지만, 다 그런 미풍양속 때미 자고로 동방예의지국이라는거 아녀.

 

풍근이 : 따불티오 시대에 과학영농을 빼면 할 말이 없는 농림부 농진청 같은 중앙에서버텀 지자체 순으루 다 시 도 군을 거쳐 읍 면 리 동까장 층층이 지내던 전통적인 미풍양속 문화가 기우제구, 또 우리네 같은 순박헌 농촌에 순진헌 농민들이 농심이 기우제란 걸 알기 때미 금찰두 암말 않구, 깅찰도 암말 않구, 언론두 암말 않구....

 

전풍식 : 기우제를 지내는 방법이야 부인네덜이 치루다 물 여나르기, 저수지에 들어가서 물싸움하기, 병에 물을 담어 솔잎으로 마개해서 대문짝에다가 꺼구루 매달어두기, 진마뒷산 말랭이에 올러가서 시루 쪄놓구 풍물 치면서 춤추기..... 그 허구 많은 방법 다 놔두구 산 임자 몰래 넘의 모이를 파내서 비를 벌것다구덜 한다면, 그러면 이 동네는 사람 안 사는 동네와 무엇이 다르것수, 참말루.

 

김동산 : 자네는 왜 말을 해두 꼭 꽈배기 먹어 젖니 빠진 사람마냥 비비 꽈가며 헌다나. 자네두 좀 유도리가 있이 살으라구. 공구리 바닥에 다치면 약이 있어두 아사리판에 다치면 약두 없는 벱이니께.

 

부녀회장 : 누구는 좋아서 이러구 댕기는 중 아셔유. 성가시구 구찮어두 다 동넷일이니께 우리가 않으면 누가 허랴 해서 집일 제쳐 놓구 이러구 댕기는 거지..... 아 대통령두 고통을 분담허것다구 즘심을 칼국수만 자신다는디, 가물어서 배가 삼복에 단풍들게 생긴 판에 비만 오게 헌다면 뭔 짓을 몰 헐까만....


이문구 소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장이리 개암나무-

펴낸곳 : (주)문학동네

1판 6쇄 2000년 10월 16일

p122~144

값 8,000원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