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Narcissus, 水仙花, Narcissus tazetta)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제 모습에 반하여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물에 빠져죽어 환생한 꽃이다. 그래서 수선화는 청초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사실은 총각이 부활한 꽃이다.
나르키스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림프들을 모두 외면한 양치기 소년이고, 그중 상사병으로 말라죽어 목소리만 남은 에코(메아리) 님페도 있다. 이성의 사랑을 받아줄 줄 모르고, 자신을 병적으로 사랑했기에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타샤의 정원>이라는 책이 있다. 타샤의 정원은 환상적이지만, 그 모습은 과거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녀는 여러 세대 전에 시골집 정원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을 식물들을 키운다. 타샤는 자랑을 한다. "으스대서는 안되겠지만, 우리 수선화를 꼭 봐야 해요" 그녀는 아직 봄에 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타샤 정원의 으뜸은 반복이다. 수선화 무리가 여기저기 무리져 피어있다. 유기방 가옥도 그렇다. 그 모습은 과거에 뿌리 내리고 있고 수선화도 무리지어 피어있다.
수선화는 이른 봄에 피어난다. 노란색 꽃이 홀로 또는 무리져 피어나 청초한 봄꽃의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수선화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해마다 보고자 함이다. 그런데 수선화는 사실 총각이 죽어 물귀신(水仙)으로 환생한 꽃이기에, 종자를 맺지 못하고 비늘줄기인 구근으로 번식한다.
나트막한 소나무 숲이 수선화 양탄자 처럼 뒤덮혀 있고, 해마다 넓어지고 있었다. 서산에 있는 유기방 고택 여미헌은 전형적인 시골 동네에 자리잡은 가옥이었고, 외할머니댁 같은 분위기여서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보며 즐기기에 딱이다. 수선화는 벚꽃보다 먼저 피고, 들녁이 푸르러지기 전에 노랗게 피어서 오래가기 때문에 더 좋은 봄꽃이다. 서산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는 일부러 찾아가야 즐길 수 있는 명소이다. 찾아가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광복절에 피는 맥문동(상주 상오리, 서천 장항 송림), 그 후 한 달 뒤에 피는 꽃무릇(선운산, 불갑산, 함양 성림) 등이 있다. 수선화는 수수한 노랑색이고, 맥문동은 고귀한 보랏빛이며, 꽃무릇은 정열적인 빨간색이다.
수선화(水仙花)
- 추사 김정희
한 점 찬 마음처럼 늘어진 둥근 꽃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준수하구나
매화는 고상하다지만 뜰안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이정체)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꽃미남 나르시스가 연못에 비친 제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듯이, 수선화 나르키소스도 한쪽 방향으로만 바라보듯 핀다.
수선화를 일러 금잔옥대(金盞玉臺)이라고도 한다. 금잔옥대는 금으로 만든 술잔과 옥으로 만든 잔받침이란 뜻으로, 수선화의 꽃을 자세히 보면 옥빛 접시에 금빛 술잔의 형태이다.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도, 탁본이라 그런지 노란색의 수선화는 검게 나온다.
예부터 제주에서는 수선화의 알뿌리를 말이나 소의 먹이가 됐다는 뜻으로 ‘몰마농’으로 불렸다고 한다. 제주도에 친구가 있어 물어보니 모른단다. 말마농은 처음 듣고 수선화는 안다고.....
추사 김정희는 제주 귀양살이 중 사람들이 수선화를 잡초처럼 뽑아 버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글을 남겼다.
"토착민들은 수선화가 귀한 줄도 모르고 소와 말에게 먹이고 함부로 짓밟으며, 시골의 장정이나 아이들은 호미로 파내어 버리는데 캐내고 캐내도 다시 나기 때문에, 이를 원수 보듯 하고 있으니 수선화가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나와 같다."
귀양살이 하는 추사 김정희의 감상에 불과하다. 마늘밭에 난 수선화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잡초는 뽑힌다. 잡초가 아닌, 수수한 봄꽃인 수선화는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잡은 유기방 가옥에서 그 군락을 넓혀가고 있다. 해마다 봄이면 가봐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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