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첫학기 영어수업을 들었다. 토플 점수가 입학 기본은 넘었으나 학교로서는 안심할 정도는 아니어서 입학하자마자 영어시험을 봐야만 했고 나는 챙피하게도 level test 에서 최하를 기록해 듣기, 말하기, 읽기를 모두 요하는 class로 배정받았다.
영작 수업중에 앞으로 공부를 세부적으로 공부를 할 사람들이니, 관심분야에 촛점을 맞춰서 논문을 하나 정하고, 그와 관련해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 싶은지 짧게 한장 내외로 영작해 오라고 숙제를 내셨다. 나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내가 영어를 잘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 분야에 관한 폭넓은 지식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논문을 하나 고르는 일이야 별로 어렵지 않을 터이고 이리 저리 머리 굴리면 한장짜리 숙제가 곧 완성될 수 있으리라는 안이한 확신때문에.
내 기억에 우리반엔 총 8명가량이 있었고, 5명 정도가 한국인, 중국인, 방글라데시등 아시아계열이 유독 많았다. 숙제 제출을 하고 난 며칠 뒤 writing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심각한 메일을 받았다. 나를 개인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씀 하셔서 시간약속을 정해 만나러 갔다. 건물에 가보니, 바로 앞엔 다른 한국분이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계셨다. 그분의 상담을 마치고, 다음 차례인 내가 들어갔다. 선생님께선 문을 조용히 닫으시고, 내 숙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우선 참고문헌으로 제출한 논문과 똑같은 문장을 발견해 내셨다고 하시면서, 이것은 엄격하게 plagiarism 표절 剽竊 이라고 하셨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지 못했다. 전공수업도 아니고, 지금 제출한 연구초안이 내 논문이 될 것도 아니요, 영어점수 모자라서 들어야만 하는 교양과목 수업중, 주별 숙제인데, 영작 선생님께서 조금 심하게 오바~하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수업을 들었던 한국인 학생들은 거의 예외없이 다 나처럼 불려갔었고, 불려간 뒤에도 농담삼아, 미국에선 이것이 심각한 모양이다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공부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무렵, 정신없이 바빴다. 전공 부전공 교수님께서 들으야만 한다고 하신 악명높은 학부수업을 따라가느라 정말 버거웠다. 그러면서, 나는 다른 과목 강의 조교로 일주일에 20시간씩 일을 해야만했다. 말이 20시간이지 영어가 안되는 나로서는 30분 강의하기를 최소 6시간에서 8시간까지 준비해야만 했다. 시간적으로 딸리고, 실력면에서도 뒤떨어지고, 그렇다고 절대시간을 요구하는 학부과목을 빵구낼 수는 없는 법!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과목을 수강했던 역대 한국인 선배님 리스트를 뽑아서 족보를 얻어낸 것이다! 이 과목 수강뿐만 아니라, 강의 조교까지 하신 분이 계셔서 손발이 달토록 빌고 또 빌어 족보를 겨우 얻어냈다. 주별 퀴즈는 중복되거나 비슷한 문제도 많았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원생인데, 누가봐도 뻔히 다 탄로가 나게 답을 고스란히 베낄수는 없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paraphrase 해서 다른 말로 바꾸었다. 단문은 복문으로, 능동태는 수동태로. 부사나 형용사 수식어 바꿔주는 일은 기본이고.
학기가 중간에 치달을 무렵, 소름끼치도록 정중한 메일을 받았다. Dear Jaejin Suh. 미국에서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나의 영어 닉네임 Grace 를 알기 때문에, Hi, Grace, Hello~ Grace, How are you doind, Grace? 하고 이멜이 시작된다. 하지만, 행정상 잘못된 일이 있거나,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 모든 편지는 Dear Jaejin Suh 로 소름끼치게 시작되곤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Nutritional Science 과 대학원 Dean이자, 이 과목을 맡으신 교수님께서 보내신 멜이다. 사연은 적지 않으셨고, 언제 시간이 되니 교수님 방으로 직접 찾아오라고 하셨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노심초사하며 뒤척이다 한숨을 못자고 약속한 시간에 교수님 방문을 두드렸다. 첫학기때 영작 선생님께서 날 부르셨던 그날과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며, 교수님은 방문을 잠그시고 심각하게 말을 건네셨다.
내가 듣고 있는 학부과목 담당 미국인 조교가 말하기를 Grace 가 cheating 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했다. 유독 Grace 답안이 조교가 가지고 있는 답안과 유사하고, 작년에 이 조교가 이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작년 시험지와 답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고 투철한 신고정신을 자랑하며 선생님께 밀고를 했다는 것이다. 중간고사도 아니요, 더우기 기말고사도 아닌! 일주일에 한번씩 주는 weekly quiz, 겨우 10점짜리를 가지고 너무 오바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더더군다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10점 중에 0.5 점짜리 1번 문제에 속한 c 번이었다.
내가 학부과목을 듣고 있긴 하다만, 나도 다른 과목 조교하는데, 저 미국인 조교 아이는 나한테 무슨 억화심정이 있어서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나 더 이상 잃을 점수도 없는데! 아무리 족보가 있어도 현재 스코아 (score) 로는 대학원생이 민망하게 학부과목 수강하면서 바닥을 탑! (top) 으로 달리고 있는데 저 아인 필시 나의 미모를 시기하고 이런 음모를 꾸몄을지도 모른다는 기괴망칙한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난 과 대학원장님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냈고, 외국인으로써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서 선배들로부터 족보 Source 를 갖게 되었다는 진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교수님은 내가 source 를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cheating 이므로, 이 일을 전공교수님과 대학원에 동시에 알릴 것이며, 곧 관련 교수님이 모여 이 문제를 두고 committee meeting 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 방을 나오는데 하늘이 노랬다. 참, 오랫동안 벼텨왔다고 스스로 자족하고 있었는데, 드뎌 올 것이 왔구나. 내가 짐을 싸들고 좇겨나기 전에 미리 한국으로 가야할 상황이 드뎌 벌어졌구나 하면서 곧 바로 지도교수님방으로 갔다. 교수님께 상황을 말씀드리니, "I know your English~" 하시면서, 내 짧은 영어 때문에 다른 말로 바꿔서 퀴즈 답안을 작성한 것이 마치 답안을 그대로 복사한 것 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위로해 주셨다. 이문제는 더 커지지 않고, 더 잃을 것도 없는 그 과목 총 점수에서 10짜리 그 주 퀴즈는 내 것만 0점 처리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학기 실험은 한가닥 마무리 되고, 논문을 쓰는 일만 남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논문 하나 읽고, 한줄을 쓸까 말까 고민만 줄기차게 하다가, 머리 식힌다고 수영가고, 갔다와서 피곤해서 오피스에서 의자 4개붙여놓고 시체처럼 쓰러져 자기를 반복하다가 몇줄 써서 교수님께 갖다드리면 바로 이메일로 호출하신다. 달려가서 밑줄을 일일히 그으시며 check 하신 부분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원.
"Are you thinking? 너 생각이 있는 애냐?" "What do you mean? 뭔 소리냐?"
그 보다도 더 심각한 버젼은
"Where did you copy it? 어디서 베꼈어? " "Where is your reference? (내가 보니 니 의견이나 생각이 아닌데) 참고 문헌 표시 왜 안했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남의 것을 내것처럼 표현하고자 했으나, 교수님 눈에는 영락없이 티가 났던 모양이다. 나중에 논문을 다 마치고 어쩜 그렇게 귀신처럼 잘 잡아내셨냐고 여쭤보았더니, 허술한 영어 문장이 갑자기 눈에 띄일 정도로 휘황찬란해 지면 바로 의구심을 품으셨다고 하셨다. 평생을 이 일만 해오신 분이시니.
이 보다 더 놀라운 일은 교수님께서 이미 다 검증이 된 논문의 화학구조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셨다. 나는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논문을 자기 논문에 인용하기까지 했는데, 나같은 석사 나부랭이가 아는 것이 뭐가 있다고, 이 도표에 제시된 화학구조가 틀렸다는 것을 밝혀내나! 거의 열흘이 넘는 시간을 이 하나에만 매달렸다. 결과는? 우리 교수님 말씀이 맞았다. OH 알콜기가 위쪽으로 올라가 표기되어야 했는데, 실수로 아래로 표기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눈에 잘 띄이지 않는 작은 부분이었기에 간과하고 넘어갔었던 것을 copy 한 것을 찾으시느라 돋보기 까지 동원하셨던 지도교수님께선 찾아내실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학위 마치는 일과 논문 쓰는 일이 남들보다 두배로 더디가자, 한국에서 방문과학자로 visiting scientist 로 온 동생이 하루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누나, 누나는 논문을 왜 이리 더디 쓰우?" 속으로는 그래, 너 잘났다 하고 되받아 쳐주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논문 쓸때 넌 쉽더냐?" 생각은 한국말이고, 쓰기는 영어로 해야 되서 말이지. 괴리감이 생각보다 크네!" 하고 답했더니, 동생이 다시 말했다.
"뭐가 문제야, copy and paste, copy and paste. 복사하고, 붙여놓구, 복사하고 붙여놓고."
"야, 그거, 걸리면 학계에서 빨간줄 전과자가 되는 거야. 불명예를 안고 학계 퇴출, 제명 당한다구!"
"무슨 소리! 나, 그 석사 논문 내자마자 교수님이 승인해 주시고, 바로 논문 대회 제출해서 최우수 논문상 먹었어!"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우리 나라 학계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인정하고 묵인되는 현실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누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지만, 누구 하나는 반드시 선두에 서서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평생 미운 털이 박히더라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런 잘못이 덜 일어난다는 말일 것이다.
작정하고 TV를 안보고, 집에 아예 TV조차 설치를 하지 않은 나이지만, 오늘은 일부러 인터넷으로 PD 수첩을 보았다. 아직, 결과가 어찌나오게 될런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논문 중 사진이든, 데이터는 습관적으로 우리가 해왔던 Copy & Paste 가 직간접적으로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날 충격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까지껏, 0.5점 짜리 문제를 가지고 왜 들 이리 난리야? 주마다 내는 숙제에서 조금 비스꾸무레하게 배꼈길 왜 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하던 바늘 도둑이 어느새 소도둑으로 둔갑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교가 세계적으로 망신살을 뻗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기에 이르렀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 역시도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과학계에서 더 공부해서 학계에 남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통탄함을 금할 수 없다. 우선은 남이 지켜보든 안 지켜보든, 가슴에 손을 얹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양심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지금, 그 양심이 몹시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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