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어떻게 유럽식탁을 정복했나
- 다음 브런치 장준우 글 -
https://brunch.co.kr/@julieted17/36, 2017. 5. 11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 잡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 두 나라는 신대륙에서 고추를 처음 들여와 키운 지역이자 서유럽에서 고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은 새로운 땅을 정복했다고 여겼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약재와 관상용으로만 쓰이던 고추가 어느새 그들이 식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아 식탁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흔히 고추하면 빨갛고 긴 고추를 떠올리는데 피망, 파프리카도 고추에 속한다. 멕시코의 칠리(Chilli), 프랑스의 피망(Piment), 헝가리의 파프리카(Paprika), 미국의 레드페퍼(Red pepper)는 모두 고추를 뜻하는 말이다. 열대성 작물인 고추는 특히 헝가리에서 인기가 높으며 인도와 동남아 그리고 원산지인 남미와 북아프리카 등에서도 많이 재배되고 또 소비되고 있다.
고추가 유럽에 건너오게 된 건 스페인의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이후다. 이 시기 유럽인들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서쪽으로의 항해를 결심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후추나 넷맥, 클로브 등 향신료 때문이었다. 15세기를 기점으로 지중해의 패권이 쥔 오스만 제국이 서방세계에 대한 견제책으로 향신료 무역을 통제했고, 향신료 값이 치솟자 유럽인들은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인도를 향한 새로운 무역항로를 개척하게 되었다.
콜럼버스는 후추를 손에 넣지 못했다. 대신 지금의 아이티 섬 인근에서 원주민들이 아히(Aji)라고 부르는 고추를 가져왔고, 귀족들은 관상용 식물로 키웠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의 상인들에 의해 약재로서의 효능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 효과가 좋은 약재로 알려졌고, 때로는 각성제로, 최음제로도 소개되면서 수요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일반 대중에게 고추는 후추의 대용품으로 그 지역의 전통요리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고추 요리 중 하나는 파드론 고추(Pimiento de Pardron)를 볶은 후 올리브유와 소금만 곁들이는 요리로, 고기나 생선 등 요리에 곁들여 먹거나 그 자체로 술안주, 타파스로 먹기도 한다, 또한 고추를 야채처럼 통째로 요리에 쓰기도 하지만 말려서 곱게 간 분말 형태, 피멘톤(Pimenton)으로 사용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피멘톤은 요리의 맛을 살려주는 훌륭한 조미료로서 가장 훌롱한 용도는 뭐니 뭐니 해도 초리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초리조는 소지지의 일종이다. 소시지에 피멘톤을 넣게 된 이유는 소시지에 들어가는 소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재료가 바로 고추였기 때문이다. 이는 캡사이신 성분이 가진 항균작용 덕이다. 비싼 소금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피멘톨을 넣어 만든 초리조의 독특한 풍미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의 전통요리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음식의 심리학>에서
매운 칠리 고추를 잘 먹는 사람은 모험가이다. 이 결과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폴 로진(Paul Rozin)과 데보라 실러(Deborah Schiller)가 최초로 실시한 칠리고추 소비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따른 것이다. 멕시코에서 칠리 소비는 강함, 과감함, 남성적 특징으로 통한다. 칠리를 좋아하는 미국 대학생은 과속운전, 낙하산 다이빙, 차가운 얼음물에 뛰어들기처럼 모험이 따르고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는 활동을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로진은 연구를 이렇게 요약한다. "예측 가능한 위험은 매운 칠리가 주는 무척 자극적인 경험과 같다." 로진은 부정적 육체경험이 도취감을 불러일으키는 마조히즘의 특징이라고 했다.
매운 칠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험정신이 강하고 아슬아슬한 위험을 즐긴다. 또 변화와 강렬한 기분과 모험을 갈망한다. 이 모든 성향은 이른바 감각 추구자(Sensation Seeker)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긍적적으로 표현하면 호기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조금 덜 친절하게 표현하면 아주 빨리 싫증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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