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인들의 식량이었던 감자는 약 4000년 전부터 남미 폐루에서 재배되었다. 그들은 감자전분을 만들어 빵을 만들기도 했고 치카chica라는 술을 빚어 마시기도 했으며, 심지어 질병 치료에도 사용했다. 그들에게 감자는 아주 중요한 식량자원이었으므로 감자신을 숭배했고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다음은 잉카 사람들의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으로 우리는 감자가 그들에게 얼마나 귀한 식량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조물주여! 모든 만물에 생명을 주시고, 인간을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하도록 해주시는 신이시여! 땅에 과일과 감자 그리고 다른 음식을 번성하게 하여 우리 인간이 굶주림과 불행으로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 해주소서.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스스로 믿었던 유럽사람들에게 감자는 더럽고 칙칙한 갈색의 불경하고 성서에 나오지 않는 식물로 비기독교적unchistian 원시적인 것으로 취급받아 남미에서 데려온 노예들의 식량으로나 사용되었다. 게다가 먹으면 헛배가 부르고 심지어 독이 있어 이런 못생긴 외모와 특징으로 감자는 많은 수난을 겪었다. 실제로 감자싹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성분이 있다.
유럽에서 토마토는 맨드레이크 열매와 유사하고 감자는 맨드레이크 뿌리를 연상케 하여 여러 미신을 낳았다. 맨드레이크 뿌리는 인삼 뿌리처럼 쭈글쭈글한 말라빠진 사람의 몸과 비슷하게 생겨 유럽의 중세 작가나 기독교인들은 맨드레이크를 신이 인간을 만들려다 일어난 첫 번째 시도의 실패작이었다고 믿고, 살아있는 악마의 영혼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맨드레이크와 함께 토마토는 에덴동산에서 온 사악한 열매였다. 그런데도 유럽 사람들은 맨드레이크에 집착했다. 창세기의 야곱의 두 부인이 맨드레이크(합환제로 번역됨)를 놓고 다투는 장면을 보고 유대교에서는 임신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다(창세기 30:14~16). 그래서 맨드레이크는 독이 있지만 올바르게 복용하면 진통제로 사용 가능하고, 무엇보다도 남자에게 정력제로, 여자에게 임신촉진제로 간주했다.
먹으면 포만감도 생기고, 무엇보다도 성性과 관계가 없이 재생산이 가능한 감자의 순결성은, 즉 암수 구별없고, 씨앗도 없이 직접 자신의 몸 일부에서 후손을 만들어내는 특징은 유럽의 일부 엘리트층으로 하여금 감자의 가치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동정녀 마리아를 연상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잉카말로 감자의 이름인 papa는 이태리말로 보면 pope, 즉 사제 혹은 로마교황을 뜻하는 낱말이었기 때문에 감자는 가톨릭의 후광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재배하는 데 특별한 농기구도 필요하지 않는 등 많은 장점을 가진 감자는, 토마토와는 반대로 우둔해 보이고, 칙칙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외모와 생식의 특징 때문에 정작 유럽의 굶주린 소작농들에게는 배척받았다. 또한 지배계층은 감자를 자신들에게는 적절한 음식이 아니고 불결한 농민들에게나 완벽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였다.
감자는 보기에 못 생겼고, 자칫 썩기 쉽고 게다가 땅 속에서 놀라우리만치 많은 열매가 그리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열리는 것이 악마의 농간이라고 생각한 유럽 대다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못생긴 것도 서러운 데 나병에서 매독에 이르기까지 많은 질병을 일으킨다는 오해도 받았다. 스위스 사람들은 감자를 많이 먹으면 연주창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연주창은 림프샘의 결핵성 부종인 갑상선종이 헐어서 터지는 병이다.
- 음식패설 - 지은이 김정희 - 펴낸곳 채륜 - 1판 1쇄 펴낸날 2017년 1월 20일 - p 6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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