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찾아 언제든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식당은 여성들이 지배한다. 이름에 할머니, 어머니가 들어가는 식당은 꽤 있다. 여성들, 특히 어머니는 집안에서 가족에게 일용할 음식을 만들어줄 의미와 특권을 가진다. 할머니 또한 부엌의 최전선에서 물러난 몸으로 책임에서는 자유롭되 다년간의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존재다. 하지만 입맛은 나이가 들수록 퇴행하기 마련이니 섬세하고 화려한 맛,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이고 유행을 타는 음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을 무릅쓰고, 다른 호칭을 다 제치고 ‘할머니’를 식당 이름에 가져다 쓴다면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순두부의 원료는 콩이다. 같은 콩으로 만들어낸 순두부가 다른 식당의 것과 차별되는 맛을 가지려면 남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금방 펄펄 끓여 나와서 뜨겁고 양념이 화끈하게 강한 서울의 순두부와 다르게 이곳의 순두부는 맑고 간이 세지 않아 원래의 두부 맛이 난다. 이처럼 강하지 않고 섬세한 데서 진짜 맛을 끌어내야 하는 순두부에서는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크게 난다.
부모는 밤늦게 콩을 갈았다. 부부가 돌아가며 맷돌에 콩을 집어넣고 어처구니(맷손)를 번갈아 잡고 돌렸다. 갈아서 나온 콩 즙을 베 보자기에 받쳐서 뜨거운 물을 붓고 콩 국물과 비지를 분리해냈다. 콩 국물을 가마솥에 넣은 뒤 아궁이에 불을 땠다.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간수 대신 쓰는 동해 바닷물을 넣어서 두부로 응고시켰다. 응고된 두부를 틀에 넣고 누르면 모두부가 된다. 이러다 보면 금세 날이 밝아왔다.
새벽부터 두부를 먹으러 온 사람들이 문밖에 줄을 섰다. 주인이 두부가 아직 굳지 않았다고 하면 그 두부(순두부는 서울말이고 원래는 초두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때의 ‘초’는 첫 번째를 의미하는 ‘初’였을 것이다)라도 좋으니 팔라고 부탁했다. 순두부를 내놓으면 혹시 밥 남은 것 없느냐 했고 결국 자신들이 먹던 반찬까지 내주기도 했다. 본디 인심 후하고 음식 솜씨가 좋았던 종갓집 며느리, 자식들 공부시키고 살림을 꾸려나가려고 부업으로 두부를 만들어 팔다가 음식 맛이 알려지는 바람에 매일 새벽 문을 여는 순두부 식당을 차리게 되었다. 그게 ‘원조 할머니 순두부’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두부를 만들 때 오로지 우리 콩만 쓰고 아직 옛날 방식으로 솥을 쓰면서 어릴 때 먹던 음식의 맛을 지키고 있어요. 그것뿐인걸요.”
-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 지은이 성석제 - 펴낸곳 한겨례출판(주) - 초판 1쇄 발생 2015년 11월 23일 - p 87 ~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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