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밀, 기타 맥류

박정희 대통령의 비름나물 비빔밥과 예산 소복갈비

산들행 2018. 5. 13. 10:53

모두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어린이 박정희의 집도 마을 여러 가구 중에서도 유독 가난하였다박정희 대통령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삶이 순탄치 않았다. 가난한 살림에 늦둥이를 낳는다는 것이 버겁게 생각된 어머니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등 여러 차례 유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았고, 어머니는 늦둥이 막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20리 시골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봄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먹고 있었다. 바로 비름나물과 보리밥을 반씩 섞은 비빔밥이었다. 허름한 부엌에서 홀로 비름나물 비빔밥을 먹던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선 어린 아들을 발견하고는 "이제 오냐". 같이 먹을래?" 하고 바가지를 내밀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정희 대통령은 책보를 맨 채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비름나물 비빔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허기진 상태에서 먹어서였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비빔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기억하는 최고의 맛이었다고 한다. 훗날 자서전 <나의 소년시절>에서는 그날 먹은 비름나물 비빔밥을 별미 중의 별미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비름나물을 좋아했고, 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종종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산책하다가 청와대 요리사였던 손성실 씨가 일하는 주방으로 불쑥 방문하였다.

 

"그건 먼가?"

"비름나물입니다."

"비름나물? 내가 좋아하는 건데 왜 나는 안 주고 다른 사람만 주냐?"

 

평범한 나물반찬이라서 청와대 직원들의 식탁에만 올리려고 준비 중이었던 요리사 손성실 씨, 순간 당황했지만 재빨리 고추장과 된장에 나물을 버무렸고, 대통령은 바가지 채로 비름나물에 보리밥을 쓱쓱 비빈 뒤 그대로 들고 먹었다. 그런데 한참 맛있게 먹다가 곧이어 특유의 낮고 강한 음성으로 덧붙이는 게 아닌가.

 

"이건 막걸리가 좋은데......“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름나물은 그냥 나물 반찬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밥상이었던 것이다.

 

 

충남 예산의 삽교천 방조제 기공식이 끝난 후, 박정희 대통령과 일행이 향한 곳은 충청남도 예산에 위치한 소복갈비였다. 전쟁 때 시장에서 팔던 갈비가 인기를 얻어 3대째 운영되고 있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식당이 많지 않았고, 그 지역에서는 맛있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 대통령의 점심식사 장소로 선택된 것이다. 이 식당에서는 갈비를 손님이 앉은 자리에서 굽는 것이 아니라 식당 밖에 있는 화덕에서 구워 내놓았다. 대통령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간 그날(19791026), 박정희 대통령의 비보가 전해졌다. 삽교천 방조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 장소로, 소복갈비는 마지막 외식장소로 남게 되었다.

 

- 대통령의 밥상

- 글쓴이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 펴낸곳 고래미디어

- 초판발행 2012118

- p62 ~80

대통령의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