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부석사와 안양루의 김삿갓 시

산들행 2018. 5. 22. 09:08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 / 유홍준>에서 발취하였다.


영주 부석사는 태백산맥이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제 갈 길로 떠나가는 양백지간(兩白之間)에 자리잡고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황산(鳳凰山) 중턱이 된다. 부석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는 형용사로는 부석사의 장쾌함을 담아내지 못하며, 장쾌하다는 표현으로는 정연한 자태를 나타내지 못한다. 부석사는,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부를 때만 그 온당한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





부석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량수전에 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 法性偈」에서 말한 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뉨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을 나타내는 원융(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배치가 부석사인 것이다.



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여래의 상주처인 무량수전 건물은 1043년, 고려 정종 9년,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할 때 지은 집으로 창건연대가 확인된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랜 것이다.




무량수전은 특히나 예의 배흘림 기둥들이 훤칠하게 뻗어 있어 눈만이 사뭇 시원한데 결구방식은 아주 간격하여 강약의 리듬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석사 무량수전 좌우로 이 위대한 절집의 창건설화를 간직한 부석(浮石)과 선묘 아가씨의 사당인 선묘각(善妙閣)이 있다. 선묘는 중국아가씨였다. 그 아가씨가 의상을 위해 자기희생을 한 것만은 기록으로 분명하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그 건축적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 보고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오솔길 양옆으로는 언제나 산죽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고목이 된 떡갈나무, 단풍나무 들이 오색으로 물들 때면 자연은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정겹게 다가온다. 오솔길의 끝은 조사당이다. 조사당 건너편, 무량수전 위쪽에는 나한상을 모신 단하각(丹霞閣)과 응진전이 있는데, 그 모두가 부석사 본편의 여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답사는 볼품없는 곳까지 간다는 데 의의가 있는 법이며, 흙길을 돌아 오르는 산책의 즐거움이 오롯하기에 나는 이곳을 순례길에서 뺀 적이 없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 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태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안양루의 전망은 홀연히 심신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천하의 방랑시인 김삿갓도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서는 저 예리한 풍자와 호방한 기개가 한풀꺾여 낮은 목소리의 자탄(自歎)만 하고 말았다.


浮石寺(부석사)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백수가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인간 백세에 몇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