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의 세상 사는 이야기 (7)
캄보디아의 신(新) 녹색혁명①
올 2009년의 우기는 예년보다 한 달 이상이나 빨리 시작하였다. 이미 3월 중순부터 대부분 지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농민들의 농사 준비도 한결 빨리 시작되었다. 여러 지방에서 5월 중순에 이미 모내기를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몇 지방에는 우기 초에 그렇게도 쏟아지던 비가 뚝 그치고 말았다.
캄보디아 최대의 곡창지대인 뽀삳, 받덤벙, 반떼이미은차이, 깜퐁톰 및 깜뽕참의 톤레삽 주변의 몇몇 지역에서는 일찍 모내기를 한 벼 포기들이 안타깝게도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동남부의 따까에우, 쁘레이뷩과 스와이어링 등지에도 예년과는 달리 일찍이 내려주던 비가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모내기를 못할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농사의 마지막은 하늘이 도와주셔야 한다는 말을 새삼스럽게 되뇌곤 한다.
이번 우기 들어서 세 번째 서북부 방문길에 들어섰다. 받덤벙 시내에서 빠일린으로 가는 57번 국도는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개울에 삐걱거리던 나무다리를 걷어내고 시멘트 교각을 세우며 도로 확·포장공사가 한창이다. 받덤벙에서 쁘롬의 태국 국경까지 이어지는 전장 102km의 이 57번 국도에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뽀얀 먼지 속을 달리던 일들도 머지않아 아스라한 추억이 될 듯 하다.
농업은 살아 움직이는 동물과도 같다. 비록 그 작물과 그 나무들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지만, 주변의 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렇듯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서 농업도 쉼 없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오각을 통하여 끊임없이 보고, 음미하고, 어루만지고, 냄새를 맡고, 느껴야 한다. 그리곤 한 없이 되씹으며 고민하여야 한다. 이것만이 최대공약수에 접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신념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서북부 농업현장을 찾아 나섰다.
로타낙몬돌 군청 옆의 공지에 수 천 톤의 옥수수가 이 곳 저 곳에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굉음을 내는 탈립기들이 노랗게 여문 탐스런 옥수수 알갱이들을 마치 하늘에서 우박을 퍼붓듯이 쉼 없이 쏟아낸다. 따갑게 내려 쬐는 오후의 태양 볕에 건조를 하기 위하여 펼쳐놓은 낱알들이 마치 반짝이는 보석처럼 아름답다. 수확한 옥수수자루들을 산더미처럼 실은 대형 곡물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들어와서 와르르 옥수수를 쏟아 붇는다. 한 편에선 어린 소녀들과 아낙네들이 이미 건조된 옥수수를 거둬서 자루에 담고, 이렇게 건조한 옥수수 자루들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시각을 지체하지 않고 태국 국경을 향하여 출발한다.
유월 중순에 찾아왔을 때는 막바지 카사바 수확이 한창이었다. 카사바 수확 철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옥수수 수확에 들어선 것이다. 5~6년 전만 하여도 이 곳 서북부는 전통적으로 가장 농사를 잘 짓는다는 깜뽕참의 쩜까르와 쩜까언동을 제치고 캄보디아산 참깨의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었다. 특히 이 지역의 검은 참깨는, 품질은 물론 생산량에 있어서도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 하였다. 그것이 이제는 모두 카사바와 옥수수의 양대 작물로 바뀌어버렸다.
로타낙몬돌을 떠나서 57번 국도의 중간지점인 삼롣으로 들어가는 치판 삼거리에 이르렀다. 캄보디아는 지역마다 중심부나 마을 입구의 로터리에 비쉬누, 시바, 나가 등, 힌두신들의 동상을 세우고 지역의 상징으로 추앙한다. 하지만, 이 곳 삼롣 입구의 로터리에는 바구니에 가득 담긴 옥수수와 카사바를 어깨에 멘 농부의 동상이 서있다. 이 지역 주민들의 농업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보는 듯 하다.
삼롣으로 들어가는 길은, 비롯 노폭은 좁지만, 지난 2007년에 아스팔트포장공사를 하였다. 상카에강 위의 다리도 말끔한 시멘트 교각으로 바뀌었다. 상카에강을 건너서 언덕에 올라서니 시야에 닿는 모든 산비탈과 구릉이 온통 수확 중인 옥수수와 막 심어서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는 카사바로 뒤덮였다. <계속> 김진호 capacambodi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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