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짚의 신세

산들행 2010. 1. 17. 16:22

  나는 지프라기...

  한 겨울 초라한 신세로 남아 있는 지프라기...

  짚불 때는 공부란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풍성했던 가을 어느날 콤바인이란 무지막지한 사이보그가 못된 인간충을 태우고 내 몸뚱아리를 베어갔다.

 그래서 다 털렸다.

 너무도 원통한 마음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타는 속으로 눈 속에서 이렇게 절규하지만...

 

 용케 피했다.

 지금은 초라하지만 봄 날 싹을 틔울 수도 있겠다.

 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베어진 몸뚱아리에서 부랴부랴 생을 이어갔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렬히 마감했다고..........

 

 다 털렸지만 몸뚱아리는 밑뚱아리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으되 한 몸이 될수 없다. 

 

 잘린 몸이 아플터이니 누워 있으란다.

 가끔은 고개 들어 세상을 보고 싶으나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내 신세.....

 운명이겠지.....

 

 춥다고 옷을 입혀 주웠나?

 그러나 남의 살이 되기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한 것이다.

 남의 살이 되어 실체가 없어지지만 그 정신은 면면이 이어지는 것이다.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고 하더니 아애 꺼꾸로다.

  겸손하기로 치면 제일이다.

  다 털려 가진 것이 없는데도 오로지 낮은 자세로 겸손해야 한다.

 

 일하는 중이다.

 대추나무 얼어 죽지 않게 하는 것이 내 임무이다.

 오로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행복하다. 할일이 있어 살신성인이라고....

 

 버려졌다.

 아무렇게나.....

 불꽃에 몸 사를 운명인가 보다.

 

 볏짚 인생이 그럴진대...

 나는 눈이다. 

 지금 햇빛을 도구삼아 예술하는 중이다.

 니들이 예술을 알아?????????  

 

 난 니들과 달라....

 다름은 존중되어야 한다.

 틀린 것이 아니기에.......

 

 흔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다.

 그것은 니들 말이다.

 예술은 허무하고 짧다.

 피지 못한 예술들이 얼마나 많던가.....

 화려하게 군림했으나 사라져간 예술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다 털리고 몸뚱아리가 밑뚱아리를 만나지 못하는 세상에서

 한 예술이지만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원래 다 그런 것이다.

 

 자 이제 맨 처음의 말로 돌아가 보자.

 짚불 때는 공부에 대하여.......

 이것이다.

 볏짚 하나하나 태워가면서 가마솥에 밥을 해 보라고....

 수백개 아니 수억개 짚을 태워도 밥이 되지 않는다.

 공부도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이다.

 짚 하나하나 태우듯 하면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작은 솥은 작은 덩어리로, 가마솥은 큰 덩어리로 불을 일으켜 밥을 해야 하듯이

 공부도 인생도 저와 같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부터 무엇을 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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