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모내기와 이모작이 삼남지방까지 널리 성행하면서 농업생산력을 크게 증대되었다.
모내기 방식은 종래의 직파 재배법과 비교할 때 제초작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서너배 아끼는 효과가 있었으며, 보리 수확기와 벼 파종기가 한달 정도 서로 겹치는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논에서도 이모작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토지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다.
제초작업에 들였던 품을 크게 아낄수 있었다.
한층 집약적인 토지 경작이 가능해졌으며, 다른 한편에는 경작면적이 넓어졌다.
그래서 농민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증대된 생산력은 사회적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 생태적 삶을 일구는 우리네 농사연장
- 김재호 글/이제호 그림
- 펴낸곳 소나무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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