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흔적들

태백산 천제단 산행기

산들행 2010. 1. 25. 19:34

산들님이란 주정일의 태백산 산행기

 

- 2010. 1. 24(일), 흐림

- (들머리) 화방재(해발 950m, 주유소와 음식점) - 사길령매표소 - 산령각 - 유일사쉼터 - 주목군락 - 장군봉(1,567m) - 장군단 - 태백산 정상석(천왕단) - 단종비각 - 용정(1,470m) - 망경사 - (점심) - 반재(간이매점과 구조대 대기실) - 옹달샘과 호식총(보지 못함) - 단군성전 - 당골광장(눈꽃 축제장) - 석탄박물관 - 소도성황당 - 주차장(날머리)

- 거리 : 8.5km(화방재에서 태백산 정상까지 4.1km, 정상에서 당골광장까지 4.4km)


  꿈속에 들지도 못하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준비랄 것이 있겠는가? 그냥 주섬주섬.... 사각 차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비몽사몽 뒤척이며 꿈속에서 달려 화방재에 도달하니 8시 30분쯤이 되었다. 이 곳에서 끈을 조이고 아이젠에 배낭을 둘러메고 태백산 산행이 시작되었고, 천제단까지는 4.1km이다. 작은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들머리는 쭉쭉빵빵하고 늘씬한 나무들이 산길을 오롯이 안내하였다. 산중의 밭을 지나고 사길령 매표소를 통과하니 한 줄로 줄줄이 오른다. 오늘은 첫 출발부터 좋다. 눈 밟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침 산행길은 천년 주목과 눈꽃에 대한 기대감으로 걸음걸이도 가볍다.

  

 

 

 

 

   사길령 매표소에서 500m쯤에 있는 태백산 산령각은 오래된 맛이 없었으나 문을 열고 보니 산적과 맹수에 대하여 고갯길의 무사안일을 기원하는 제단이었다. 태백산산령(太白山山靈)이란 신주를 중심으로 두 개의 촛대와 신주 단지가 세 개 있고, 오른쪽에 장군들과 신랑신부가 그려진 화려한 민화가 있다. 산천은 의구하되 산적과 보부상은 간 데 없고 호랑이는 사라져 버린 오늘날! 그 곳을 배낭과 스틱으로 무장한 이들이 대열을 이루어 보는 듯 마는 듯 무심히 지나친다. 신갈나무와 조릿대가 어우러진 숲을 지나 정상을 향해 가는 길에 유일사 쉼터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100m 내려가면 유일사이다. 오래된 산사는 작고 요사체는 크다.

  

<산령각과 내부모습>

 

  

<유일사>                               <주목군락의 시작>

 

  나무가 숲을 이루고 눈 밟는 소리에 이끌린 듯 오르니 목탁소리가 들린다. 주목 군락지대의 시작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그래서 이천년을 사그러질 때까지 푸름을 잊지 않고 상한 몸뚱아리를 내어놓고 세찬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아직도 팔팔한 주목은 푸른 잎을 내세워 무성함을 자랑하고 있으나 눈과 바람을 온몸으로 지탱해야만 할 것이다. 작은 나무는 작은 주목을 받으면서 바람을 이기면 큰 주목이 되어 갈 것이다. 나무가 어찌 저리 되었을까? 골이 파이고, 기우뚱 누워 있고, 반은 푸른데 있고 반은 푸른데 없으나 아애 고목이 되어 있고, 상한 몸을 땅의 기운으로 보하고 있었다. 태백산의 세찬 바람과 눈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상체기들이 신비롭고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모습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주목, 하나하나 눈길을 주면서 오르니 주목 이외의 나무들도 그 자리에 있음을 알았다. 한 여름 무성했던 잎들을 다 떨구고 빈 몸으로 겨울바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다. 태백산은 주목의 산이 아니라 주목과 어우러진 이름모를 나무들이 주인인 산이었다. 주목에 주목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나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주   목>                                      <이름모를 나무>

 

  눈길을 따라 작은 관목 사이로 나아가니 높은 곳에 돌탑 같은 것이 쌓여 있다. 사각으로 제단을 쌓고 땅의 지신에게 바쳐졌으니 장군단이고, 돌로 된 신주 3기가 안치되어 있다. 장군단이 있는 장군봉은 1,567m로서 태백산에서 가장 높다. 장군단이 호위하는 가운데 천왕단은 그보다 300m 떨어져 6m로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돌을 둥글게 쌓아 하늘에 바쳐진 제단이 되었고 성스러운 곳에 한배검이란 신주가 하나 세워져 있다. 비록 물질적인 돌로 이루어진 제단과 신주이지만 영원불멸의 신령이 강림하는 곳으로 하늘의 천왕단, 땅의 장군단, 그리고 사람의 하단이 모여 천제단을 이뤘다. 단군신화의 영원하고 신령스런 실체가 서려있는 태백산에 제단을 쌓아 하늘에 축원하였으니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성지이었고, 일제 강점 난국에 호국과 우국지사들의 출정식이 이루어진 곳이다. 그런데 나라 말아먹을 매국노들은 어디 가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생한 이들의 전설만이 남아 있는가!!! 괜한 울분에 싸였다가 천제단에 세 번 절을 올린다. 소망 하나 올리면서....

 

  

<천제단의 장군단>

 

  

<천제단의 천왕단>

 

  새벽안개가 서리로 얼어서 만들어진다는 상고대는 태백산 정상 그곳에 없었다. 눈발이 바람에 날려 나무에 붙은 눈꽃도 없었다.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신비로운 주목은 고사하고 장쾌한 능선과 첩첩산중으로 다려나가는 산하도 보이질 않았다. 오로지 희뿌연 안개에 바람이 몰고 온 추위만이 있었고, 몸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에 움츠러들고 떨렸다. 상고대와 주목이 어우러진 천지의 조화를 보지 못한 것은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산중에 날리는 뿌연 안개에 시야가 갖혀 버린 것도 다음에 활짝 열어주기 위해서 일 것이다.

  겨울산이 주는 고난과 바람을 뼛속 깊이 체득하면서 하단이 있는 문수봉을 잊고 망경사로, 반재로, 당골로 향한다. 4.4km 여정이고 반재는 하산길의 반쯤이므로 반재이다. 바람이 잦아들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진다. 단군 왕검이 왕림하는 천제단 정상을 차지할 수가 없어서 낮은 곳에 내려앉은 단종비각은 비운의 어린 왕이 배향되어 단청만 화려하였다. 임금의 자리를 빼앗기고 울며불며 한풀이만 곳곳에 새겨놓았으니 곤룡포 입고 꿈에 현몽하여 홀로 산신령이 되어 비각하나 차지하였다. 그리곤 자물쇄로 닫아 버리고 비각 속에 숨어 그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절주절 주절거리다가 만나는 곳이 망경사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동트는 햇빛을 제일 먼저 받고 천제에 쓰인다는 신성한 샘물이 용솟음치는, 용정(龍井)! 시린 물 한 모금에 태백산의 정기가 온 몸에 스며든다. 그리고 또 물 한 모금에 마음을 씻는다. 한 모금 물에 추위와 갈증을 달랜 다음 화려한 쌍용 조각에 어울리지 않는 깨진 바가지를 흉본다. 이렇게 간사하다. 망경사는 주목군락에서 천제단에 이르는 길에 맞이한 칼바람을 피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인지 제법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곳에서 다시 만난 휜님들과 무리져 제법 넓어진 길을 따라 내려간다. 반재를 지나 돌무덤인 호식총을 아무 느낌없이 지나친다. 그런데 호식총은 호랑이에게 호환을 당한 이가 창귀가 되는 것을 막고자 남겨진 유골을 모아 현장에서 수습하고 화장하여 돌탑을 쌓은 후 맨 위에 항아리를 엎어놓아 철옹성에 가두고 창검과 같은 쇠꼬챙이를 꽂아 두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살았던 무서운 태백산을 아무 염려 없이 산중에 내어놓은 나무숲길을 따라 여유롭게 내려오니 당골이다. 당골~~ 무속신앙의 느낌이 어려 있다. 그 당골광장에 단군성전이 있었고, 눈꽃축제, 사람축제 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혼란의 주차장으로 변한 넓은 터 눈길 닫지 않는 곳에 소도성황당이 자리 잡아 있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한지가 신주로 걸려있다.. 이렇게 태백산이 산행길 내내 보여 주었던 것들과 산령각, 천제단, 단종비각, 성황당 그리고 당골 등에서 천지인(天地人)을 숭배한다는 고대 민속신앙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면서 산행기를 끝마친다.

  

<망경사 용정>                               <태백산 능선>

 

  

<단 군 성 전>

 

  

<소 도 성 황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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