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가 따라 올 때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다.
즉슨 새우깡이나 받아먹을려고 따라오는 줄로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일상의 무료함에서 일탈하기 위하여 산을 찾지만 산산이 쌓이면 산행도 일상이 되어버린다.
일상이 되어버린 산행을 위로하기 위하여 벙개와 뒷풀이가 있는 것인데, 과도한 일탈은 간간이 재미를 준다.
그래서 산행의 즐거움은 산에서나 있었고, 한잔 술 뒷풀이의 줄거움은 배에서나 있었다.
새우깡을 짠물에 간해서 넘죽넘죽 받아 먹듯이, 막걸리에 안주를 왜간장에 간해서 먹었다.
그리고 뱃노래에 신나했다.
갈매기는 꿍꿍짝 쿵쿵짝 노래소리에 활강하듯 갈매기춤을 추었다.
흥에 겨운 산객들은 붙들고춤을 추었다.
살짝이 붙들어 밀고 당기며 돌리니 붙들고춤이라 한다.
붙들고춤이 안되는 이는 엉덩이를 씰룩씰룩 허리가 휘어지는 춤을 추었다.
손가락을 세우고 팔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렇게 잼나게 놀았다. 산행의 별미인 것이다.
여흥이 가시질 않아 엿 팔아먹는 순간에도 저절로 흥이 났다.
사량도 지리망산(398m)!
섬산행의 줄거움이 있는 산이다.
구름 낀 하늘에 시야는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섬에 포근히 자리 잡은 작은 포구들이 한 폭의 그림같아 좋았다.
바다가 보이고 아찔한 능선길이 있어 좋았다.
지리망산의 독특함이란 다른 산과 다른 듯한 암릉의 차이에 있다.
커다란 암벽이 아니라 작은 조각들이 켜켜이 이루어놓은 듯한 암릉에 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바위능선에 바다를 품고 걷는 짜릿함에 있었다.
내지마을에서 떼지어 출발하더니 걸음걸이에 따라 길게 줄줄이 늘어섰다.
궁뎅이(궁한), 방뎅이(방어할), 응덩이(응할) 처다보면서 걷다가 비로소 나무숲길과 바윗길이다.
지리산을 찍고 배부른 몸으로 걸으니 달바위이다.
달바위(볼모산, 400m) 가는 길은 위험한 듯한 암봉을 통해야만 한다.
몸에서 엔톨피가 막 쏟아난다. 아! 이 맛이 이 산의 맛이다.
달이 걸치는 달바위라?
달 보러 암봉으로 갈 수 있을까? 그러니 위험한 달바위이다.
달바위에서 이미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며 이 산의 독특함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고요한 바다에 하얀 포말을 내면서 지나가는 배를 보면서 저 길로 충무공의 배도 지나갔을까 하는 상념에 젖어본다.
달바위에서 하산길은 이제껏 걸었던 길에 아찔함을 더해준다.
작은 발디딤돌을 찾아 위험한 듯한 급경사길을 조심조심 내려와야 했다.
이제는 줄타기다.
가마봉(303m)에 오르기 위하여 뱀같은 줄을 잡고 개미처럼 기어오른다.
이 산의 압권은 아마 가마봉에서 옥녀봉 구간일 것이다.
가마봉에서 가야할 길을 보니 옥녀봉에 서 있는 사람이 나무인듯 하나되어 보인다.
옥녀봉이 옹녀봉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벌써 기가 눌렸기 때문인가 보다.
옥녀봉을 눈 앞에 두고 영화에서 보았던 변강쇠와 옹녀가 떠올랐다.
옹녀가 옹녀임을 알게 된 것은 뭇 남성들이 죽어나가는데 있었다.
변강쇠가 강쇠임을 증명했으니 그녀가 옹녀인 것이다.
옥녀봉이 옹녀봉으로 보이더라도 옹녀봉에 오르고자 하는 것은 남자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싹수가 노랬던가 보다.
산악대장이라고 가로 막는다. 그때 알았다. 난 안되겠구나.
그리고 옹녀에겐 오로지 강쇠만 있는 일편단심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만나기 전은 뭇 사내들 이었으나 만난 후에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하릴없는 난 내려가는 게 상책이다.
말없이 내려오니 진달래가 붉어지기 시작하는 대항마을이었다.
다시 포구에 앉아 뒷풀이를 한다.
새우깡에 갈매기 회롱하면서 뱃노래에 흥에 겨워 몸풀이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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