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흔적들

각진 돌들의 달마산

산들행 2010. 3. 31. 17:36

각진 돌들의 달마산


  해남의 달마산(498m)은 봉화대가 있었다던 불썬봉을 거쳐 문바위, 떡봉, 도솔봉(421m)까지 약 8㎞를 걸어야 바위능선으로, 땅끝(토말)에 솟은 사자봉(155m)에 이르러서야 갈무리 된다. 달마산에는 미황사라는 고찰이 깃들여 있고, 산자락마다 들과 마을을 보듬고 다도해를 앞바다로 열어놓은 산이다. 그리고 녹색으로 펴져가는 농토와 들판 너머로 산봉우리가 높이 솟아서 다듬어지지 않은 바위 봉우리와 조각난 바위가 내어 놓은 너덜이길이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큰 바윗돌을 엉기성기 쌓아 놓은 듯한 암봉은 토말의 바닷바람으로도 깍이지 않아 자연석 그대로의 거친 모습으로 무너질 듯 솟구치고, 제풀에 무너져 내린 돌들은 너덜지대 길을 이루어 놓았다. 산 능선에서 보는 탁 트인 조망은 각진 바위들이 도솔봉으로 거침없이 위세를 이어가고, 산 아래로는 들녘마다 보리가 파르라니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가 바다와 섬과 어우러진 다도해 풍광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몇 개인지 모른 바위구간을 넘거나 큰 폭으로 오르고 내리기를 부지기수로 반복하다 보면 기이한 형상의 암봉, 암탑들이 흘러내리거나 무너질 듯한 아슬아슬한 절경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졌다. 눈 들어 경치에 빠지다간 발 아래 디딤돌의 불연속으로 온 몸을 휘청거리고 어머나 하게 된다.

 

                    <문바위가 있는 암봉>                         <불썬봉은 불탄봉>

 

 

                       <달마산 암봉>                                      <달마산 암탑>

 

  한 무리 일행들이 미황사로 스며들고, 또 한 무리는 춘란을 따라 관음봉으로 스며들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 잎진다” 노래하더니 너는 지고 진달래며 춘란은 피고 있었다. 먼저 가신 이 무덤마다 소줏병 병나발 불듯이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낙엽진 나무들과 상록의 동백나무, 사스레피 나무 사잇길을 따라 걷다가 올라서니 관음봉이다. 하늘을 찌를 듯 거친 바위봉우리들이 각을 세워 연이어 있고, 거친 돌덩이 너덜이길이 시작된다. 달마산 정상은 돌무더기를 쌓아 놓고 불썬봉이라 부르는 모양인데 봉화가 있었다면 불땐봉이 맞다고 억측하면서 불 땐 흔적도 못 찾아보고 갈 길을 재촉한다. 이쪽으로 미황사 너머 육지 땅의 면면을 내려다보고, 저쪽으로 능선 아래로 펼쳐진 다도해를 바라보며 걷는 산행길은 발밑이 움찔하여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기암들이 펼쳐져 있는 사이로 숨을 고르면서 올라 저 멀리 바라보니 가야할 도솔봉이 아득하다. 결코 평탄치 못한 바위 디딤길을 쉬지 않고 걷자니 다리는 아파오고 마음은 조급해진다. 서둘러 떠난 일행들은 자꾸만 보이질 않고, 같이 가는 동반자는 꾸준히 제 속도이지만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도솔암이든, 금샘이든 모든 것을 지나치며 나아가야 했다. 딱골재, 바람재, 하숙골재, 대밭 등을 어찌 지났는지 모르고 온통 돌과 바위만 지난 듯 하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문바위가 있는 수직암봉은 급경사에 길도 희미한데 겁도 없이 오르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가며 가슴을 조였다는 사실뿐이다.

 

                                                      <불썬봉 가는 길>

 

 

                            <미황사>                                           <다도해>

 

  도솔봉으로 가까워질수록 거친 돌부리들이 잦아들어 조금씩 속도를 낼 만 하나 온 몸에 피곤함이 흐른다. 허나 여전히 오르락 내리락 죽자고 걷는데 숙여진 눈앞에 산자고가 하얀 얼굴로 그 자리에 있다. 바위를 흙으로 덮은 산길에 현호색 그리고 노루귀가 앙증맞게 꽃피어 서둘러 지나치는 우리를 무심히 반겨주고 있었다. 작은 야생화가 내어놓은 길을 조급하게 걷는 우리에게 바닷바람이 산바람소리로 변하여 소란스럽게 반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린 말을 잃어 버린지 오래였다. 도솔봉에 다 왔다고 시멘트길을 좋아라 하는데 산행 꼬리표는 다시 산속으로 이어지고, 낮은 관목이 몸을 글어대는 산속으로 이리저리 헤매는 듯 토끼걸음 하니 다시 임도이다. 이런! 그것도 평탄하나 이리저리 휘어진 임도!

늦었다~~~~~! 달린다~~~~~

 

                       <산행 초입의 춘란>                                 <무덤가 소줏병>

 

 

                                                                                      <상록의 사스레피나무>

 

  멀리 올려다보기엔 나무들 사이로 돌이 어우어진 야트막한 산으로 보였으나 막상 올라 걸어보니 채석장 돌들을 디딤돌로 삼은 듯 걷기에 더디어 조조심심해야 하고, 기나긴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수고해야 비로소 산행을 마칠 수 있는 산이었다. 발 디딤돌에 눈길만 쫓으면 달마산이 주는 능선의 거친 장쾌함과 바다와 어우러진 섬들의 그림 같은 원경을 놓치기 일쑤였다. 낮은 들에서 올려다보는 조망은 산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조망과 서로 다르니 세상을 요모조모 보아 두루두루 넓게 이해해야 함을 산에서 항상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머리는 까막이고 가슴에 다 담지 못하여 항상 잊고 산다. 완주의 기쁨에 한 대접 막걸리 들이키고 보니 관음봉에서부터 시작되어 아찔하게 쌓아 놓은 바위탑을 넘나드는 듯한 능선길은 불썬봉, 문바위를 지나도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어 오름과 내림으로 심신을 닦달한 듯 하다. 무릎팍과 발목이 아파가며 달마산을 완주하는 까닭은 걷는 내내 체득한 고행을 몸에 완주한 흔적으로 아로새기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다도해 풍광과 어우러진 달마산을 마음에 담아 추억으로 남기고자 함일 것이다. 발걸음에 짓눌린 고난의 달마산을 걷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 아니라 얼마나 고행하면서 동쪽으로 왔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돌아오는 차 창밖으로 해는 서산으로 붉게 넘어간다. 나무키 만큼 자라있던 산들은 곧 연녹의 새싹들을 내어 생의 터전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도시 너머로 해가 지는 곳은 서산이라 달마 없는 서쪽에는 누가 그 심법을 전해 주었을까? 달마가 온 동쪽은 그 까닭을 여전히 몰라 붕붕 달리는 차안에서 술만 권커니 자커니 하였다. 다음 산에서 알게 될까?

 

                       <흰노루귀>                                         <달마산 도솔봉>

 

<2010. 3. 28, 해남 달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