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남덕유산을 갔다
- 2010. 5. 24(일) 비
- 산행코스 : 영각통제소 - 경남교육청 덕유교육원 - 영각재(1,290m) - 철계단 - 남덕유산(1,507m) - 월성치(1,240m) - 삿갓봉(1,419m) - 삿갓재 대피소(점심) - 샘 - 삿갓골 - 황점마을
- 산행시간 : 5시간 30분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예보되었으니 고민할 만도 하겠다. 예보가 틀려 가끔 혼나는 기상청의 말을 이럴 땐 곧이곧대로 믿는단 말인가? 자연은 수시로 변하고 인생은 변화의 연속이다. 그래서 변한다는 사실을 화두로 두면 진정한 산행인에게 선택의 고민은 줄어들 것이다.
새벽잠에 졸면서 도착한 육십령!
734m로서 조령, 죽령, 팔랑치 등과 함께 영남지방의 4대령의 하나이다. 경남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에 있는 고개로서 60인이 모여야 도적떼를 겁내하지 않고 넘었다는 전설이 있는 이곳에 24명의 겁 없는 대원들이 내렸다. 육십령에서 날씨를 가름해 보니 흐리기만 하고 타~악~하니 골프장 너머로 시원한 전망을 내놓았다. 일말의 희망을 보고 건각의 A코스 대원들이 출발하였다. 주저주저하는 대원들을 태운 버스가 산길을 굽이굽이 달려 영각통제소에 도착하였고, 이들은 B코스 대원들이 되어 남덕유산 아래에서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곤 아무도 모른다. 각자가 무리를 이루어 어찌 갔는지 그들만이 안다.
숲길로 접어드니 잎들은 짙어져 있으나 아직은 새싹티를 내고 있고, 나무들은 서로서로 자리 잡아 제 각기로 높아지고 있었다. 봄에 피어난 나뭇잎들이 제법 펼쳐져 하늘을 가릴 만큼 자라 있고 아쉽게도 햇빛은 구름위에 숨어 있다. 빛을 얼마만큼 거를 수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낮은 곳에 봄풀들이 자라고 있으나 봄꽃들은 보이질 않는다. 다만 오를수록 작고 앙증맞은 크기로 작아진 새싹들이 빗방울을 매달고 그 속에 들어다 보는 이를 투영하고 있었다. 계곡물들은 어디에서 발원하여 저리도 급하게 흘러갈까? 우렁차고 시원한 물소리에 몸이 무거운 것은 하늘 탓이다. 하지만 진입했으니 오로지 전진만이 산행인의 자세이다.
뿌연 안개에 탁 트인 조망은 애초에 글렀다. 오로지 눈앞으로 숲길이 이어져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안개 속에 가지를 꾸부정 괴기스럽게 뻗친 나무들과 조릿대 등 낮은 관목 그리고 사이사이를 채운 작은 풀들이 덕유산의 숲을 이루어 오롯이 산행길을 내어놓았다. 그곳으로 우리는 걸었다. 나무들이 이루어 놓은 숲길을 따라 보이지 않는 낯선 시간 속으로 우리는 걸었다. 허연 산안개 속으로 고요함이 깃들여 있었고, 무리 져 걷는 우덜의 두런두런 대화 속에 적막이 깨지면서 숲길을 열어놓았다.
남덕유산 1,507m!
삿갓재에서 남은 소곡주로 건배하고 작은 먹을거리와 뜨뜻한 라면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 땀에 젖은 몸을 쉬면서 기다리니 후미조가 들어오는데 나무두릅과 고비등 산나물이 한 아름이지만 입맛만 다시고 그것은 나누어 먹지 못했다. 싫다는 술과 담배 그리고 종교를 강요하지 말고 몸에 좋은 것과 좋은 책은 나누라고 했는데...... 하산은 자꾸만 낮은 곳으로 걷는 것이고, 낮아질수록 나무들은 다시 우거지고 계곡물은 우렁차다. 물만 보면 가슴이 환희로 가득차는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유래된 원초적인 본능일 것이다. 그 본능을 알탕으로 해소할까 하지만 아직은 차갑고 몸은 젖어 있었다. 그렇게 산이 조금씩 보여준 숲길과 계곡물을 따라 우중산행을 마치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긴긴 덕유산 종주 능선길을 언제 가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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