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흔적들

비오는 산 우중 가리왕산 숲속 산행기

산들행 2010. 7. 14. 15:55

주정일의 가리왕산(1,561m) 산행기

 

- 일      시 : 2010년 7월 11일(일)  비오는 날(04시 출발  21시 귀가)

- 산행구간 : (들머리)장구목이 - 장구목이 임도 - 샘터 - 주목 군락지 - 정상 삼거리(중식) - 가리왕산 정상(상봉, 1561m) - 마항치 삼거리 - 어은골 임도 - 괴암정 - 심마니교 -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 매표소(날머리) - 버스타고 이동 - 뒷풀이

- 산행거리 : 9.2km

                  장구목이 입구 - 4.2km(4시간) - 정상 - 5.0km(4시간 10분) - 휴양림


가리왕산은?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 1,561m로서 남한에서 9번째 높은 산이다. 오대산과 더불어 태백산맥의 지붕노릇을 하고 있다. 첩첩산중에 장엄한 능선자락을 거느리고, 수목이 울창한 곳곳에 원시림과 같은 숲속을 이룬 것이 특징이다. 심산유곡에 돌과 흙으로 숲길을 내어놓은 육산으로 울창한 나무와 이끼낀 계곡이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산이다. 갈왕(褐王)이 난을 피하여 숨어들었다 하여 갈왕산이라고 불렸다는데, 나라는 어찌하고 왕이 난을 피하니 그 나라는 새되어 나가리가 되었다고 가리왕산(加里旺山)으로 불리는가 보다.


산행의 맛은?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장구목 입구부터 가는 비가 내린다. 애초에 비에 상관없이 오르고자 한 산우님들이지만 우비 입기에 바쁘다. 단단히 챙긴 휀님부터 들머리로 스며든다. 어두워진 숲길을 비장한 각오로 한참을 걷더니 가늘게 내리는 비에 땀에 젖나 비에 젖나 하나 둘씩 벗어 제킨다.  간신히 말려놓은 고추 젖을까 걱정이라더니 회장님은 머리부터 챙긴다. 비록 연잎은 아니더라도 다섯갈레 넓은풀잎을 꺾어 풀모자로 맹글어 천모자 위에 쓰니 한겹부터 세겹까지 그 솜씨가 다 제각각이다. 비오는 날! 왕눈이 개구리 먼 친척처럼 풀모자 쓰고 퍼포먼스 연출이다. 예술이 별거인가...!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 이들로 인하여 산행은 눈부터 줄겁고, 간간이 짬과 쉼에는 맛난 것들로 입이 줄겁다.  

 

 

  

 


비오는 날에 젖은 숲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나뭇잎 사이로 삐져나오는 햇빛의 색감은 없었지만, 어두운 나무틈 사이로 습기를 머금은 산안개로 채워진 숲은 태고의 신비로움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무너져 내린 고목과 낯선 풀들이 위로 아래로 어우러지니 숲속으로 오래된 시간이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계곡 따라 바위에 옷인양 덮어진 이끼는 생기를 보여 물소리와 더불어 계곡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물소리 따라 아담하고 다양한 돌길들이 연이어 올라가고 물먹은 녹색들은 싱그럽다.


숲길을 걷다가 임도에 다다르니 산안개에 그 가는 길을 가름할 수 없었다.  뿌연 안개 속으로 넓은 길이 사라지니 그 길로 가면 무엇이 있을까? 운무속으로 사라진 넓은 길을 두고 산으로 산으로 이어진 돌계단을 따라 오른다. 가야 할 길이 그 길이고 그 길이 바로 가리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길은 나무와 풀들 사이로 숨은 듯이 이어져 갔다. 그리고 산길 따라 아름들이 나무들이 제 모양대로 제 자리를 차지하여 있고, 그 사이 사이로 작은 나무들이 채워져 있으며, 낮은 곳은 양치식물들이 자리 잡으니 숲은 깊어져만 갔다.   

 

 

 

 

 

깊고 높은 산을 힘들여 오르니 샘터이다. 그런데 샘터는 옹달샘이 아니었다. 가리왕산 높은 곳 평지에 보일락 말락 흐르는 물을 모아모아 PVC 파이프로 흐르게 하였으니 샘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허나 비록 옹달샘은 아니었지만 갈증을 달래주는 시원한 물맛이 잠시 쉬어가는 이에게 더없이 반가운 쉼터이고 샘터이었다.

 

주목이 보인다. 붉은 줄기의 주목은 온갖 풍상을 견디어 42그루의 노거수로 남아 가리왕산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곳을 지나는 우리는 젖은 몸으로 잠시 쉬거나 작은 키로 나란히 서 있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듯한 태백산의 주목은 아니어도 비에 젖은 굵은 줄기만으로도 장구한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강인한 가리왕산의 주목이었다. 잠시 주목을 가슴에 담고 쓰다듬으며 비오는 산에서 새로운 산행 맛을 만끽한다. 주목 군락지에서 오래된 나무의 경외감은 지금까지 오르면서 본 나무들이 보여준 오랜 세월의 흔적과는 같은 듯 사뭇 다른 것이었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삼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상봉으로 향해 가니 갈수록 나무들은 낮아져 관목 숲길로 변해 있었다. 이끼와 어우러진 계곡을 끼고 원시림 같은 숲길을 따라 꾸준히 올랐더니 어느새 바람부는 정상이다. 정상석은 돌무더기와 함께 습기를 머금은 산안개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사방팔방을 보여주질 않는다. 이곳에 오르고자 부단히 걸은 시간은 한참이었지만 잠시 머물기엔 아깝다. 하지만 이제는 내려가야 하리..... 앞선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시 숲속으로 바삐 내려갔고, 남은 이는 산에서 나는 질경이에게 시간을 죽였을 뿐이다. 그렇게 정상에서 앞선 이와 늦선 이는 다르게 움직였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에는 야생화를 피어내는 풀들로 우거진 사잇길이다. 화창한 봄날!!!  바람부는 이곳은 무슨 야생화가 차지하였을까 상상하며 상상의 꽃터널길을 따라 완만히 헤처나간다. 갈수록 내림길이 가파르다. 그것도 한참을 가파르다. 그러나 나무들이 이루어 놓은 숲은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변화되어 갔다. 오를 때 보았던 숲과는 다른 숲이 내리막길에 자리잡아 있었다. 가리왕산의 줄거움은 갈길 바쁜 울창한 숲에서 조심스런 변화를 찾는데 있을 것이다. 간간히 되돌아보고, 올려다 보며, 휙이익~둘러보면 가리왕산의 숲은 조금씩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정상으로 향했다가 계곡으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숲이 다하는 곳에 바위들 사이사이로 물들이 흘러 계곡을 이루고, 소리내어 꾸불거렸다.  그런 길과 숲을 따라 우리는 걸었던 것이다. 산행의 추억으로 남겨놓았는가?

 

늦었으나 어은골에 다다르니

"아이는 고비 뜯으러 가고 송림은 비었세라(송강 정철)"는 글귀가 엄청 와 닫는다. 잠시 소리내어 산에 올랐던 산우님들은 이제 가리왕산을 비우고 다시 어느 산으로 채워갈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들의 산행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