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흔적들

비에 젖은 운장산, 땀에 적은 구봉산

산들행 2010. 9. 16. 08:59

~~ 운장산,구봉산 ~~


출발일시 : 2010. 09. 12  05:00시 K2매장 출발

산행장소 : 운장산,구봉산(전북 진안)

산행코스 : 피암목재 - 활목재 - 칠성대(서봉, 1,113m)) - 운장대(운장산, 1,126m) - 삼장봉(동봉, 1,133m) - 각우목재 - 묏자리(중식) - 1087봉 - 헬기장 - 임도 - 복두봉(1,018m) - 자루목재 - 구봉산(천황봉, 1,002m) - 돈내미재 - 8봉(755m) - 돈내미재 - 천황암 - 상양명주차장

산행시간 : A코스 약 7:30 /B코스 4:30

준 비 물 : 음료수, 배낭, 모자, 등산화, 장갑, 스틱(2개가 신체 무리를 덜어줌), 기능성 등산복(보온성), 양말,등


운장산과 구봉산 연계 산행에 다녀왔다. 한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참석할 기회가 없더니 아주 오랜만에 오른 산이었다. 하산 길에 본 구봉산의 모습은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운일암 반일암 가는 길에 본 적이 있는 산이었다. 아! 내가 그때 가족과 함께 본 산을 오늘 휀 님과 함께 드디어 가보는 것이구나!


잠결 내내 빗소리가 들린다. 전날 예당저수지를 돌아 홍성 내포축제를 들러 시골집에서 열심히 세차하고 난 후 비가 오더니, 산에 가야할 마음을 놓지 못하게 비가 줄기차게 온다. 비와도 간다는 산악회의 산훈과 비와도 참석한다는 무대포 정신이 비 오는 새벽을 나서게 했다. 비몽사몽 새벽길을 따라 버스는 달리는데 빗발은 갈수록 거칠어진다. 차안에서 걱정이더니 일단 목적지 까지 가보자 한다. 뒷좌석에서는 새만금 이라고 누군가는 누군가와 전화한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행을 포기하고 새만금에서 회 먹고 있다”고....


대야 땜을 지날 때 하늘은 흐려있으나 땜의 물에는 물그림자가 조용하다. 창밖으로 보니 땜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런데 갑자기 왜 애인이 생각이 날까? 애인이 있기나 하나?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길이니 꼭 기억하고 만산에 단풍지는 이 가을에 꼭 와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일단 A코스 출발지인 피암목재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이곳에서 반이나 산으로 스며들어갔다. 결석하면 같이 놀 친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 항상 개근하였다는 최*현님과 함께  B코스팀은 버스타고 떠났다. 인증 샷을 찍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들머리로 입산한다. 조금 올라가는데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버스를 가 버렸고 비는 내린다. 아고고... 이미 늦었다. 어쩌나? 그냥 가야지. 비 오니 몸과 마음도 젖어들기 시작한다. 차곡차곡 젖어든다. 그래도 뒤돌아 갈 수 없으니 오로지 전진만으로 오른다. 초반부터 힘들다. 활목재 지나 헉헉대며 오르다 보니 칠성대(1,113m)인지 오성대인지 아니면 서봉인지 암봉이 넓게 퍼진 곳에 다다르고, 흐려 보이는 산 풍경이 그래도 좋다. 앞서 오른 이들이 저쪽 바위까지 올라가 운무로 희미해진 산을 널리 조망해 보고 있다. 그리고 암릉이 주는 멋에 취하기보다 앞으로 비와 함께 가야할 길이 더 걱정이기에 갈 길을 재촉한다. 첫 봉우리에 올랐으니 다음 봉우리로 걷는 폼은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한참 오르다 보니 운장대(1,126m)란 정상석이 있다. 이곳이 운장산인가 보다. 운장대를 지나 분홍빛 뽕 막걸리를 선두대장, 배 대장 그리고 선두인과 나눠 마시니 젖은 몸이 좋아라 하고 닭발이 속 허기를 채워준다. 한결 업된 기분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니 삼장봉(1,133m, 동봉)이 나온다. 상장봉 지나 소나무가 멋드러진 공터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잠시 쉬었다. 얼음이 살짝 뜬 막걸리는 입안에 맴돌아 숨이 가빠진 산객을 진정시키고 뜨거워진 몸을 식혀 주었다. 닭도 산닭이 좋고 오징어도 산오징어가 좋다더니 막걸리도 역시 산막걸리다.

 

 


운장산의 특징은 남다른 산길에 있었다. 산죽이라 불리는 조릿대가 대나무 숲만 하다. 이렇게 큰 산죽 군락을 처음 보았다. 대나무중 가장 작은 대나무가 조릿대 라는데 왜 이리 큰 것인가. 조랭이를 만든다고 해서 조릿대라는데 고혈압, 암, 심화증에 좋다고 나와 있고, 이렇게 좋은 효능을 가진 조릿대가 운장산에 엄청 많았다. 길도 넓힐 겸 조금씩 베어 갔으면 좋겠다. 길은 외길로 아주 좁다. 산새는 허공중에 날아 길은 흩어져 보이질 않고, 산짐승이 내어놓은 길도 낙엽위에 숨어들어 희미해 졌을 텐데, 산객이 내어놓은 산길은 조릿대에 가려져 있다. 작은 키에 위로 길을 낼 수 없으니 바닥을 기어서 조릿대 터널을 뚫고 가야했다. 그것도 길었고, 끝나면 또 나오는 조릿대 사잇길을 어림잡아 전진해야 했다. 징글징글하게 우거진 조릿대 숲길을 산다람쥐 마냥 뚫고 나아가는데 비는 내리다 말다 한다. 아고고.....

조릿대길로 뚫고 나와 조릿대 길로 들어가야 하는 작은 공터에 떼와 잔디가 사라져 버린 작은 무덤터가 있고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아버지묘 풀 안 깎는다고 사랑하는 아들 다리를 아프게 한다고 푸념하는 휜 님의 넋두리가 울리는 묏자리에 둘러앉아 밥 먹을라고 하니 비가 또 부슬부슬 내린다. 국물이 적다고 반찬이며 밥이며 다 말아놓는다. 다 먹고 나니 비가 그친다. 아고고.....

갈수록 지쳐가고, 비에 젖은 것보다 조릿대로 인하여 온몸이 젖어 지쳐갔다. 고어텍스라는 등산화가 물장화가 된 것도 다 조릿대가 머금은 빗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빗물에 젖은 것보다 조릿대에 젖은 몸이 측은하다. 물 버릴려고 살짝이 열어보니 물먹어 쭈그러진 고추가 아주 녹아 없어진 듯 하다. 아고고고....


조릿대가 허락하는 만큼의 좁은 살길만 걷다보니 제법 넓어진 각우목재 임도가 반갑다. 미끄러져 한 자리 널찍하게 사 놓고 온 몸에 흔적을 남긴 여전사님과 한숨 돌리고 또다시 오르니 복두봉을 향해서 이다. 싸리버섯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야할 먼 길에 싸리버섯을 흘깃 보니 땅위에 핀 꽃처럼 앙증맞다. 오르고 내리고 쉬고 전진하다 보니 이번엔 시멘트 임도이다. 넓다. 한 무리 산객들이 자리 잡아 식사중이다. 산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는 지금까지 온 길을 다 잊어버렸는지 앞으로 가야할 길이 운장대라고 가르킨다. 그리고 넓어진 임도 따라 복두봉과 마지막 종착지인 양명주차장으로 안내한다. 여기서 잠깐 무전이 오가며 혼선이다. 선두 대장은 임도 따라 내려오란다. 대장이라 무전기 주었더니 두 분이 말로만 큰소리로 길을 찾는다. 이럴 땐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다. 자! 따르라! 배 대장이 간판을 돌리니 돌아간다. 그리고 제대로 이정표가 맞는다. 아고고..... 선두 대장의 과거사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알바 대장이란다. 선두 대장은 C코스를 개발했는지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대장을 따라간 발 빠른 휜 님이 낙심할까 걱정되었다. 더 이상 온양 K2 산악회 꼬리표를 볼 수가 없었다. 아마 저 쪽으로 줄줄이 붙어 갔으리라.

 

 

 

 


헬기장을 지나 임도에서 올라 복두봉(1,018m)에 오르니 이젠 비가 그치고 하늘은 맑아진다. 그리고 멀리 지나온 길을 운무 사이로 열어 보여주었다. 복두봉에서 구봉산은 2.7km이다. 조릿대가 잦아들고 부드러워진 산길이 걸음을 재촉하게 하였다. 구봉산 정상은 천황봉으로 1,002m 이다. 이곳에 비구름은 완전히 물러가고 멀리 낮은 산 속에 용담 땜을 담아서 보여주었다. 가까이에는 일봉부터 시작된 팔봉까지 암릉이 연이어 있다. 저 곳을 넘어가야 하리..... 구봉에서 팔봉을 향해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이지만 한참을 가파르다. 힘든 코스이다. 이제껏 조릿대가 비와 함께 긴긴 거리를 어렵게 했다면 구봉산을 내려가는 길은 산이 주는 가파름으로 조심하게 하였다. 산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비가 왔으니 임시폭포도 볼 수 있었다. 물이 소리 내어 흐른다. 팔봉으로 가는 길에 이제껏 만났다 헤어진 산객님들이 더 이상 만나지지 않는다. 선두 대장이 만들어간 C코스에서 우선 분열하더니 뿔뿔이 흩어져 제각기 A-1, A-2, A-3코스가 나뉘어졌다. 남녀 4인이 무리지어 팔봉으로 힘들게 오르고 구봉산이 주는 멋을 조망하면서 같이 좋아라 한다. 이 맛이다. 멀리 일찍이 앞서간 이들의 배낭커버가 딱정벌레마냥 뛰둥거린다. 다리는 아프다고 자꾸만 느림보 만드는데 언제 따라가나.... 팔봉에서 칠봉을 갈려니 가는 길은 사라지고 낭떠러지이다. 올라온 길의 흔적만 남아있고 내려간 흔적이 없다. 뒤돌아 빵꾸다. 팔봉 둘레길로 나오니 잭슨 대장이 땀 뻘뻘 헉헉 돌아 나온다. 시간이 없으니 돌아가란다고 인민 대장이 지시했단다. 그런데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나 없는 것이지 일봉부터 구봉까지 넘어가려는 사람에게는 널널한 것이다. 다만 힘이 부치고 느릴 뿐이다. 천황암으로 가파르고 거친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왔다. 돼지비계에 먹걸리를 다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는지 장난 비스므리한 소리가 무전기에서 한참을 흘러나온다. 그러나 급할 것이 없다. 천황암 지나 계곡 물속에 몸을 담그고 땀을 씻다 보니 핸드폰도 물에 젖고 썽구리는 물 속에 숨어든다. 찾을 것 찾아 제법 편안해진 길을 따라 젖은 몸으로 걷는다. 초입에 비에 젖었으나 이젠 계곡물에 젖었다. 그래도 좋다. 잦은 비에 많아진 계곡물에 우렁차진 물소리도 좋다.


그렇게 힘들게 장장 8시간을 산에서 산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예전에 운일암 반일암의 겨울 모습을 구경하고 되돌아 나왔을 그 도로를 따라 마지막 구봉산의 일봉과 칠봉을 보면서 산행을 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