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밀, 기타 맥류

눈 빠지게 기다리는 봄, 그리고 보릿고개

산들행 2010. 4. 2. 10:14

  남편은 글만 알고 시부모는 망령뿐이며 시누이는 험담만 늘어놓은 가난한 집에 시집온 16세 처녀가 집안을 일으켰고, 아들들이 크게 벼슬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딸이 시집 갈 나이가 되자 일장 훈시를 하는데, 거두절미 하고 ‘나처럼 살아라’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겪었던 가난을 옛이야기처럼 딸에게 설명하는데, 그 상징으로 내민 것이 옷으로는 무명이요 먹을거리로는 보리죽이었다<괴똥어미전>. 이처럼 보리는 가난과 한(恨)의 상징이었다.

 

  보리는 언제나 배고픔과 가난의 상징이었고, 쌀에 비해 이등작물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그나마 보리마저 익지 않은 보릿고개는 한국인이 눈물겹게 넘어가야 할 생명의 고개였다. 우리 조상들에게 굶주림은 일상에 가까웠고 그때마다 가장 목 빠지게 기다린 것이 바로 보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보리밭이 푸르러지면 마음도 풍성했으리라.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참고 견디면 봄이 온다는 희망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가장 큰 역설이다. 따뜻한 봄일지라도 참고 견디며 언젠가 얼어 죽을 겨울이 온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네 조상들의 겨울은 단지 ‘봄’이 아니라, 보리가 있는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었다. 겨울은 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었고, 어서 산에 나물이라도 돋아 허기를 면해야 하는 절박한 계절이었다.


  보리는 한의 곡물이지만 거기서 풍류를 퍼 올리는 것이 한민족이다. 요즘은 사시장철 특별식이니 오늘 점심은 보리밥으로 채우며 역사를 씹어보는 게 어떨까?


- 뜻밖의 음식사

- 지은이 : 김경훈

- 펴낸곳 : 오늘의 책

- 초판 1쇄 2006. 5. 8

- p 190 ~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