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숍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1897
- 일본을 거쳐 내한한 비숍여사가 한국을 돌아보고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가난과 불결이었다. 조선에 사는 한국인들이 가난한 것은 노동 의지와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노동 의지와 생산성은 그토록 낮은가? 결론은 부패한 관리의 수탈 때문이었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체념이 끝내 한국인을 가난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한국인의 생활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체념한다.
- 그녀가 더욱 절망한 것은 상류상회의 사치와 방탕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비숍여사는 한국의 장래에 더욱 절망을 느끼게 된다.
- 비숍여사는 여성들의 한글 해득률이 0.2%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새비지-랜도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1895
- 새비지-랜도어가 본 조선의 첫인상은 이 땅이 다민족으로 혼혈된 사회라는 점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북방의 몽골리안족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중앙아시아의 혈통이 많이 혼혈되어 있으며, 남방계의 피도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 장옷을 덮어쓰지 않고서는 대낮에도 외출할 수도 없고, 밖에 볼 일이 있으면 해가 진후에야 몸종을 데리고 외출해야하는 풍습 등은 그의 눈에는 희한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한국의 여성들은 외간 남자를 만나면 아무 집이나 자기 집처럼 일단 몸을 피한다. 중동의 회교권 여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이와 같은 은둔성과 남편의 방종한 생활은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 그는 특히 상류층에 올라갈수록 사대부의 아내들은 정신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며, 이런 점에서 그들은 하층민들 보다 결코 행복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양반댁 마님은 소실에 대한 질투를 안으로 삭여야 하고, 그 엄정한 법도 아래에서 참고 살아야 하며, 자식에 대해 부모로서의 권위를 포기해야 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는 것이 랜도어의 관찰이다.
- 그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과식을 강요하는 관습이었다. 그는 어느 세도가의 초상화를 그려 주고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 점심 식사를 먹어야 했던 악몽을 털어놓고 있다. 왜 한국인들은 폭식을 하는가? 그의 설명에 따르면, 상류 사회의 폭식은 허례에 원인이 있었다. 그런 반면에 가난한 사람의 폭식은 다가올 굶주림에 대한 공포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영양분을 비축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 격변하는 바깥세상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조정의 무사안일한 평온과 국제적인 무방비, 관리의 끝없는 수탈과 이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 그리고 인성으로 볼 때 싸우는 듯한 말투, 민속의 대표적인 현상인 정원 대보름의 부락간의 돌싸움 등, 어느 모로 보나 이 나라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길모어 「서울풍물지」 1892
- 한국인이 누추해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유별나게도 때가 잘 타는 흰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부모뿐만 아니라 왕실에 초상이 났을 때에도 흰 상복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상복을 벗는 날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 그가 바라보는 쇄국의 원인은 왜구의 노략질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자기 방어의 본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왜구가 저토록 포악할 진대 서양 오랑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라는 두려움이 그 바닥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 그가 겪어 본 상류 사회의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반드시 경어를 썼으며 결코 하대하지 않았다. 여인이 천대 받기는 커녕 내당 마님의 존엄성은 절대적이었으며, 한 가문의 영광이나 몰락은 그의 처신에 달려 있을 만큼 그의 존재는 막강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 그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가장 가슴 아파한 것은 양반계급이 노동의 신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지배 계급이 노동을 천시함으로써 실제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계층으로 하여금 자포자기의 절망감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 그는 이미 대한제국의 미래에 암운이 끼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찰은 그가 가르치던 양반 자제의 타락함과 나태함, 그리고 무례에 대한 깊은 절망에 기초하고 있다. 모두가 양반의 자제였던 학생들은 후대를 이어갈 인재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조국의 미래를 고뇌하는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헐버트 「대한제국 멸망사」 1906
- 그는 한국에 쓸 만한 여관이나 호텔이 없는 불편함을 피력하고 있다. 왜 한국에는 여관이 없을까? 그것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밥과 잠자리를 요구할 때 이를 거절하는 법이 없는 한국인의 인정 때문이었다. 이 인정이 결국은 금전적인 낭비의 원인이 되고 있고, 식객의 파렴치함과 그 수효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가족 또는 씨족 중심의 소집단 이기주의였다. 가족이 살갑게 사는 모습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한국에는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다는 것이다.
- 한국의 여인은 어렸을 적에는 아무렇게나 속된 아명으로 부르다가 남동생이 태어나면 아무개 누이로 불리고, 시집을 가면 고향을 따서 파주댁이나 광주댁으로 불리고, 자식을 낳으면 아무개 엄마로 불리면서 일생을 사는 동안에 여성의 존엄성이나 정체성이 존재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 헐버트는 한국의 멸망이 일차적으로는 지배계급의 부패 즉, 내재적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민생을 괴롭히는 것은 매관의 연쇄현상으로 나타나는 아전의 횡포였다. 이것은 결국 민심의 이반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었다.
-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 - 지은이는 신복룡 - 도서출판 풀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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