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질로 자주 인용되는 게으름에 대해 살펴보자. 부자나라 사람들은 으레 나라가 가난한 것은 국민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단히 가혹한 조건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게으르게 보이는 것은 시간에 대한 산업사회적인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연장이나 간단한 기계만 가지고 일할 때에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을 할때는 시간을 엄격히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자 나라 사람들은 시간개념에 대한 이런 차이를 게으름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나라에 '게으르게 지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빈둥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대개의 경우 실업 혹은 준실업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일자리가 충분치 않은 사회라면 열심히 일하라는 설교만으로는 사람들의 일하는 습관을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이것은 문화가 아니라 경제적인 조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심지어 불법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가난은 또 법의 집행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위법 행동을 '문화적으로' 수용하기까지 한다.
'오늘을 위해 사는 것' 혹은 '태평하게 사는 것' 역시 경제적인 조건이 빚어 내는 결과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경제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겉보기에는 분명히 변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대로 전해져온 민족적 습관들' 중에서 대다수는 경제적인 조건이 변화하면 상당히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특성을 가지고 있어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휠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
100년전의 일본인들은 대부분의 서구인들 눈에 게으른 사람들로 비쳤다. 일본에서 25년을 살았던 미국인 선교사 시드니 굴릭이 1903년에 쓴 「일본인의 진화」라는 책에서 많은 일본일들이 '게으르고 시간의 흐름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썼다. 또한 그는 '실없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으며, 주로 오늘을 위해서 살아가는' 특징을 가진 '태평하고' '감정을 잘 주체 못하는' 일본인들의 문화적인 고정관념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들을 무수히 보았다.
19세기 중반에 독일이 경제적인 도약을 하기 전까지는 영국인들에게 독일인들은 '둔하고 굼뜬 사람들'이었다. '게으름'은 독일 민족의 특성으로 자주 언급되는 단어였다.
과거에 일본 문화나 독일 문화가 경제발전에 불리한 것처럼 보였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더 부유한 나라 출신의 관찰자가 외국인에 대해 가진 편견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부자나라의 상황과 가난한 나라의 상황은 다르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진정한 '오해'도 있었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지은이 장하준/옮긴이 이순희
- 펴낸곳 도서출판 부키
- 2010년 4월 9일 초판 106쇄 펴냄
- p 28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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