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수수, 기장, 메밀

계축일기와 수수, 수수떡

산들행 2011. 2. 23. 07:37

영창대군이 죽고 난  후의 기록은 인목대비의 서궁생활이 중심을 이룬다.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이었으니 서궁에서의 비참한 처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계축일기(癸丑日記)』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매우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명례궁(明禮宮, 덕수궁의 옛이름)에 갖히어 지낸 지 십년이 되어 가니 모든 물건이 다 동이 나서 신창 기울 노끈이 없어 베옷을 풀어 꼬아 입고, 옷 지을 실이 없어 모시옷과 무영못을 풀어 쓰곤 하였다.  ····· 윗사람은 치마 할 것이 없어 민망히 여기고 있었더니 짐승의 똥에 쪽새(염료로 쓰는 쪽 풀)가 들어 있어 한 포기 났거늘.... 남빛을 들이기 시작했다. 쌀을 일 바가지가 없어 소쿠리로 쌀을 일었더니 까마귀가 박씨를 물어 와.... 네 해째는 큰 박이 열렷다. 겨울을 칠팔년 지낼 사이 햇솜이 없어 추워서 덜덜 떨었는데 그것으로 옷에 솜을 넣어 입었다. 또 꿩을 얻어 왔는데 목에 수수씨가 들어 있어 심었더니 무성히 열린지라. 가을이 되어 찧으니 수수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 씨 뿌리지 않은 나물이 침실 앞뜰에까지 가지가지로 나니 기특하게 여겨 가꾸어 뜯어 삶아 먹으니 맛이 좋거늘 모두 먹더니 꿈에 사람이 나타나 이르기를, "나물을 못 얻어 먹기에 이 나물을 주노라" 하더란다.

 

 

 

※ 『계축일기』에 묘사된 광해군은 매우 부도덕하고 패륜적인 인물이다. 아들 영창대군을 잃은 복수심에 치를 떨던 인목대비의 주변에 있던 궁녀가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린 인조반정 후에 서술한 책이니 당연히 그리한 입장이 반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계축일기』에는 궁중의 비사를 비롯해 당시의 풍속과 생활사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인현왕후전』,『한중록』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궁중 문학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조선소설속 역사기

- 신병주, 노대환 지음

- 펴낸 곳 : 돌베개

- 2009년 10월 30일 개정증보판 14쇄

- p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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