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일반

호박꽃에 대한 박지원의 생각

산들행 2011. 3. 14. 10:58

이미 열매를 맺었다면 마땅히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심는다는 것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방도이므로 씨를 인(仁)이라고 말하며, 인이라는 것은 소멸치 않게 하는 방도이므로 종자(種子)라고 일컫는다. 하나의 과실열매를 미루어서 온갖 이치의 실체를 징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군자가 저 화려한 꽃을 싫어함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꽃이 크다고 해서 꼭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니 목단과 작약이 그런 것이다. 모과의 꽃은 목련에 미치지 못하고, 연봉오리의 열매는 대추와 밤만 못하다. 호박과 같은 것이 꽃을 가지는 경우에는 더욱 하잘것 없고 품위가 없어 봄날의 뭇 꽃들과 나란히 봄을 장식하거나 요염을 떨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 넝쿨이 뻗어남은 멀고도 길어서 한덩이 호박이면 한 가정의 끼니를 제공할 수 있고 한 움큼의 씨앗이면 백마지기를 덮을 수 있으며 따 갈라서 바가지를 만든다면 몇 말의 곡식을 담을 수 있으니 도대체 꽃과 열매란 어떠한 관계에 있다 할 것인가?

 

-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도서출판 학고재

- 초판 7쇄 2004년 9월 30일

- p 316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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