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 침략 초기부터 적진을 오가며 사자의 역할을 도맡아 했던 최명길은 항복을 요구하는 그들의 국서에 대한 답서를 작성했다. 이를 본 김상현은 편지를 찢으며 대성통곡을 하고 최명길을 꾸짖었다. 최명길은 찢어진 답서를 주워 모으며 말했다. "대감은 이를 찢었지만 우리는 이를 주워야만 합니다." 김상현은 도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최명길은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기 위헤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청군이 물러간 뒤 김상현은 곧 벼슬을 그만두고 안동으로 낙향했고, 최명길은 계속 조정에 있으면서 전란 뒤의 나랏일을 수습해 나갔다.
청나라의 기세가 욱일승천하는 때, 김상현과 최명길은 패전국 인질의 신세로 심양의 관소에 유폐되었는데, 이때 김상현은 74세, 최명길은 58세 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담배는 조선의 특산물로 청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사신을 수행하는 상인들의 주요 무역 품목중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돈도 쌀도 없는 조선 사람들이 인질은 사오기 위해 대신 가져갔던 것이 바로 담배였다. 이 때문에 청태종은 조선사람들의 담배 유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 거문고 줄 꽂아놓고 - 이승수 지음 - 펴낸곳 돌베개 - 2006년 10월 20일 초판 3쇄 발행 - pp 173~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