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감자

우리나라의 감자와 고구마 보급

산들행 2013. 7. 14. 20:35

거의 같은 시기에 보급되기 시작한 감자와 고구마지만 보급의 속도는 감자가 고구마를 훨씬 앞섰던 것 같다. 재배와 저장이 쉬운 면도 있겠지만 곡식을 심을 수 없던 산간 지방이나 북부 지역에는 곡식의 대체작물로 감자의 효용성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흉년을 이기는 구황작물로의 역할도 고구마보다는 감자가 더 뛰어났다. 생육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보관도 고구마보다는 감자가 쉬워 추운지역에서는 구덩이만 파 놓으면 해결될 수 있었다. 또한 고구마의 주요 재배 지역은 곡식이 풍부한 남부였지만, 감자는 거의 곡식이 부족한 지방에서 대체작물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맛에 있어서도 고구마는 달기 때문에 주식으로는 쉬이 물릴 수 있지만 감자의 텁텁하고 구수한 맛은 쉬이 물리지 않는다.

 

감자는 우리나라에서 어째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곡식 위주의 유럽에서도 감자가 자리잡기까지는 거의 2백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감자가 들어왔던 19세기 초는 김씨의 세도가 시작되고 백성들은 점점 더 비참해져 이제는 막다른 궁지에 몰리게 된 그런 때였다. 기근과 흉년, 수탈 속에서 이 감자가 보급되었다. 감자는 농민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절대절명의 운명이었다. 사람의 터전을 빼앗긴 농민들은 유랑을 하거나 산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감자가 없었다면 화전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리들의 가렴주구와 흉년의 이중고를 겪고 있던 농민에게도 밭의 둔덕에서 자라는 이 고마운 감자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아사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감자의 눈물겨운 사연은 나라를 빼앗기고 멀리 간도로 이주를 해야 했던 농민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감자는 우리네 농민들에게는 눈물 어린 마지막 생명줄 이었을 것이다.

 

- 악마의 선물 감자 이야기

- 래리 주커먼 지음/박영준 옮김

- 발행처 : 출판사 지호

- 초판 1쇄 발행일 2000년 2월 15일

- p 307-311

- 값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