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쌀

조선시대 외국인들이 기록한 한국의 주식 쌀과 배터지게 먹는 대식 습성

산들행 2016. 6. 3. 23:00

개항기 이후 서울에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게 된다. 외국인들은 조선의 농수산물 공급실태는 양호한 것으로 기록했다. 스웨덴 기자 그렙스트(Grebst)는 자신의 조선 방문기에서 "조선인은 농작물 중 쌀을 으뜸으로 하며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쌀을 매우 중시하며 농부를 숭상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쌀농사 다음으로 조선인들은 주로 채소류를 가꾸는 데 정성을 쏟는다. 콩 종류만 해도 20가지가 넘는다(스웨덴 기자 Ason 100년 전 한국을 걷다)"고 적고 있다.

캐나다 선교사인 게일(Gale) 또한 《코리안 스케치 Korean Sketch, 1898》에서 "내륙에 들어섰을 때 기름진 언덕과 계곡에 오곡이 풍성하게 무르익고 있는 모습에 매혹되었으며, 경작할 수 있는 모든 땅이 개간되어 있는 상태이며, 양식은 수백만의 한국인이 먹고 살기에 충분하며 해마다 수출입의 균형을 이루고 있고, 담백한 쌀밥과 배추김치와 국과 콩과 간장이 한국인이 1년 내내 매일 먹는 일반적인 식사다"라고 적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외국인의 견해를 통해서이지만 조선 중기 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우리나라는 식료품의 자급이 가능했으며 쌀을 주식으로 하고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당시 조선사람들이 주로 먹은 음식에 대한 기록은 그 밖에도 많다. 특히 쌀이 주식이라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오페르토도 "조선의 주식은 쌀밥이고 부식류로는 채소, 생선, 조류(닭고기?, 새?), 때로는 돈육(돼지고기)이 있고, 우육(소고기)은 거의 먹지 않는데 그것은 일본에서와 같이 종교적인 근거에서가 아니라 본디 토지가 적고 산악이 많아서 목축이 거의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금단의 나라 조선)"라고 적었다.

 

외국인들은 조선인의 식습관 가운데 대식(大食) 습관을 가장 인상 깊다고 말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록에서도 나타나는 사실이다. "조선 사람들의 식사법 중에서 눈에 띈 결함은 그들이 탐식을 한다는 사실로서...... 식사를 많이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잔치의 평가는 음식의 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에 있으며 말을 하다가는 한입 가득히 먹을 수가 없으므로 식사 중에는 거의 말이 없다".

"조선 사람들은 언제든지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닥치는 대로 아무것이나 공격하여 '그만 먹겠다'는 말을 하는 일은 드물다. 심지어는 식사 때가 아니라도 먹을 것이 나오면 마음껏 먹어치우려 한다.... 먹기 시합도 흔히 볼 수 있다... 조선인들은 매 끼니마다 엄청난 양을 먹어치운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소화장애의 어려움을 자주 겪는다는 것이다. 음식의 상당량이 생선, 육류, 채소를 막론하고 날것으로 섭취된다".  "평상시 조선 사람들은 일본인의 두 배를 먹는다". (그리피스, 지음 신복룡 옮김, 은자의 나라 한국, 1999)"

 

"그 당시 영양실조가 횡행한다고 했는데 음식은 가능한 한 있을 때 많이 먹는 습관이 있다. .... 조선 사람들이 또 하나의 결점은 대식이다(달레 지음 정기수 옮김, 조선교회사서론, 1966)".  "식사를 많이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잔치의 평가는 음식의 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에 있다. 많이 먹을 수 있는 배를 가졌다는 것은 큰 덕이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아무것이나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배를 훈련하려 한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무릎위에 앉히고 병아가리에 마개를 쑤셔넣듯이 밥을 먹인 다음 나뭇가지나 국자로 가끔 아이의 배를 툭툭 때려서 밑바닥까지 꽉 차 있는가를 알아본 다음 아이가 신체적으로 더 이상 삼킬 수 없을 경우가 되어야 그만 먹인다(그리피스, 지음 신복룡 옮김, 은자의 나라 한국, 1999)" .

 

유일한 여성 작가인 이사벨라 비숍(Bird Bishop, 1892~1904)도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많이 먹인 후에도 띠를 둘러 등에 업은 채 다시 한 번 밥을 먹였다. 그러고도 미심쩍은지 펑펑한 숟갈로 배를 두드려보더니 밥을 더 먹였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밥을 더 먹이고 싶은 우리나라 어머니의 유난한 마음은 밥 먹기가 고단했던 구한말에 더 강하게 나타났고, 이러한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이를 기이한 행동으로 묘사하였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지금도 자식들에게 '밥을 먹고 다니냐'고 묻지 않는가?

 

조선인들이 대식(大食)하는 민족으로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접촉했던 대부분의 사람은 외국 문물에 대해 폐쇄적인 양반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점했던 농민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노동량이 많았기 때문에 필요한 열량도 많았을테고 대부분 밥과 같은 탄수화물 식사에 의존했던 것이기에 자연스레 밥량도 많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외국인들은 우리민족 전체를 대식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크다.

 

- 밥의 인문학

- 정혜경 지음

- 펴낸곳 도서출판 따비

- 초판 1쇄 발행 2015년 5월 10일

- p8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