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기념관(http://www.sudang.net/,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181-7, 041-331-4401)
수당기념관은 수당(修堂) 4대(이남규 李南珪, 1855~1907, 이충구 李忠九, 이승복 李昇馥, 이장원 李章遠)로 이어진 애국 호국활동을 소개하고, 후세대에 애국애족정신과 독립정신을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세웠다.
수당기념관에는 여러가지 유품을 볼 수 있고, 사무실에 해설을 부탁하면 기념관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수당고택과 수당기념관의 위치
수당기념관의 이문원 관장은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내신 분이다.
수당 이남규 선생의 존영이다.
사가살 불가욕(士可殺 不可辱) 즉 '선비는 죽일 수 있으되 욕보일수는 없다'는 말로 유명하다.
수당 이남규는 갑오경장과 을미사변 때 상소문을 올려 그에 대한 옳지 않음을 주장했다.
1906년 홍주의병장 민종식이 수당의 집에 들러 묵고 간 일이 있는데,
일본인들로부터 뒤에서 의병활동을 책동하는 것으로 의심받고는
1907년 공주 감옥에 10개월간 투옥되었다가 방면된 후 피살되었다.
이때 장남인 이충구도 투옥되고 살해되었다.
수당 고택 전경
왼쪽이 사랑채이고 오른쪽이 안채와 문간채이다.
가옥배치는 동쪽에 안채와 문간채, 서쪽에 사랑채가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즉 사랑채와 안채를 분리하여 나란히 배치하였고, 동쪽에 안채를 두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는 안채의 전면 쪽에 두어 내외를 구분하는 배치법을 사용한다.
또한 동쪽 방향에 사랑채(남자의 공간)를 두고, 서쪽 방향에 안채(여자의 공간)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배치이다. 오행이치로 보면 동쪽은 남자를 상징하고, 서쪽은 여자를 상징한다.
그런데 수당 가옥은 일반적인 안채와 사랑채의 배치법과 다르고, 안채의 방향도 다르다.
아계 이산해의 손자인 이구(李久)가 24세에 요절하자
그의 부인인 전주 이씨(1588~1668, 종실 순령군 이경검 順寧君 李景儉의 딸)는 서울에서 아계 이산해의 묘소가 있는 예산으로 이거, 정착하였다.
전주 이씨는 50세에 이곳으로 이거하였고, 81세까지 살았으며, 그의 아들은 32세, 손자 둘도 조졸하였다.
그래서 수당 고택은 주로 전주 이씨가 호주로서 기거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따라서 오행이치에 따라 안채는 여자의 공간이기 때문에 서쪽에 배치하는 것이 맞지만
전주 이씨가 주로 기거하였기에 안채를 동쪽으로 특이한 배치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당고택 사랑채
사랑채의 당호는 평원정(平遠亭)이다.
一자형이고 정면 6칸, 측면 2칸이다.
사랑채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큰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큰사랑방과 작은사랑방은 들어열개와 장지문이 달려 있어
문을 들어 열면 하나의 커다란 거실이 된다.
그래서 큰 모임이 있을 때 대청마루의 평원정 대청마루를 이용했고,
그래서 사랑채의 당호는 평원정이다.
수당 이남규 선생의 고택
문간채(행랑채)
정면 7칸, 측면 1칸의 홑치마 우진각 지붕이다.
안채
안채는 ㅁ자형으로 되었있고 모두 5량의 굴도리집으로 홑치마에 팔작지붕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부분이 안대청이고, 오른쪽으로 골방, 안방, 다락, 부엌이 있으며,
왼쪽으로 사당, 마루방, 퇴마루, 건너방, 다락, 부엌이 있다.
사랑채와 굴뚝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에 튓마루가 있다.
예산 상항리 석불
이남규 고택의 동쪽으로 약 100m지점에 있고, 타원형 판석에 조각한 마애불이다.
방산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제방 부근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본래 미륵불은 남녀 1기가 세워져 있었다고 구전되고,
남자 미륵은 분실되었고, 여자 미륵만 남아있다.
해마다 천방사 스님이 주제하고 방산리와 인근지역 주민 부녀자들이 참여하는 미륵제를 지낸다.
미륵제는 사찰과 여성들이 주관하는 불교식 제례이다.
이광임 선생 고택
수당기념관에서 방산지를 지나면 있다.
조선 순조 때인 1820년에 지은 목조건물이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재실 등이 있으나 문은 잠겨 있어 안을 볼 수 없다.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 이다.
사랑채 마루
아계공 사당
수당 고택, 방산지, 이광임 고택을 지나 산속으로 계속 가면
아계 이산해의 사당과 묘소를 볼 수 있다.
이정표가 없으니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수당 고택에서 약 1.5km 거리에 있다.
아계 이산해의 둘째 사위가 한음 이덕형이다.
토정비결의 토정 이지함은 그의 숙부이다.
아계 이산해의 묘
아계 이산해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두번이나 지냈다.
정여립 모반사건을 서인인 정철 등이 맡아서 처리했는데, 이때 동인들이 처벌받았다.
선조때 정철은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삭탈관작 당한다.
이때 동인은 정철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북인과 귀양을 보내야 한다는 남인으로 파벌이 나누어졌다.
아계 이산해는 북인의 영수이었다.
묘소는 '옥녀탄금형'으로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다.
맞은 편에 물이 있어야 명당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하여
연지라는 연못과 삼신도가 조성되었다.
묘소로 가는 길은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다.
연지와 삼신도
구전에 의하면 아계 묘소의 풍수설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묘역의 허한 결점을 메우기 위해
이곳의 흙을 파서 묘역을 조성하였고, 연못을 조성하였다.
연못이 들어서는 자리는 풍수에서 '명지꾸리 담그는 형국'이다.
연못에 3개의 조산을 만들고 느티나무를 심었는데 본래 있던 것은 고사되었고, 약 20여년 전에 새로 심었다.
3개의 섬이 삼신도(三神島)이다.
방산저수지의 노을
뒷늦게 연지라는 연못보다 더 큰 저수지가 조성되었다.
옥녀탄금형에 기를 더하는 물이 가득하다.
풍수지리가 완성된 것일까? 훼손될 것일까?
누구 것인지 설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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