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반도의 서쪽 끝자락인 전라도까지 천릿길이라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첫번째가 '보릿국'이다. 보릿국이라면 무슨 보리 곡식으로 국을 끓이는가 할 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보리는 다 알다시피 전해 가을에 벼를 베고 추수를 하고 나서 다시 땅을 갈아엎는 뒤에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추위와 눈보라에 시달리며 싹을 틔운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을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올 보리농사 풍년 들겄네!˝"하고 이야기 한다.
새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면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 밭두렁이 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 싹이 고개를 비죽 내민다. 바로 이때에 보리싹을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 먼저 쌀뜨물을 받아다가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애'를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 보리싹은 된장으로 살살 버무려 두었다가 넣고 끓인다. 한 술 떠넣으면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 있는 보리싹과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 내음이 입안 가득 맴도는 것 같다.
- 황석영의 밥도둑 - 지은이 황석영 - 펴낸곳 (주)문학동네 - 초판 3쇄 발행 2016년 3월 22일 - p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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