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은 밥과 더불어 인류가 먹어온 중요한 주식에 속한다. 특히 서양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탄수화물 식품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빵은 단순히 영양을 공급해주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ᆞ사회적ᆞ정서적 가치를 띤 상징물이 되었다. 밥이 한국인에게 그러하듯이 말이다.
동료 혹은 회사를 뜻하는 영어 'company'는 '빵을 함께 먹는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um panis 쿰 파니스'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말 '식구(食口)'가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인 것과 유사하다. 기독교에서는 성찬식 때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때어날 무렵 쌀 한 그릇과 미역 한 다발, 정화수를 준비하고 삼신께 빌었다. 제사 때에는 반드시 쌀로 지은 밥을 올렸다. 이처럼 어느 민족에서든 주식은 그들의 소망과 기원을 담보하고 애환을 반영하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빵은 가장 오래된 가공식품중 하나다. 가공식품의 정의가 식품 원료의 특성을 살려 보다 먹기 쉽고 소화가 잘 되도록 변형시키는 동시에 저장성을 좋게 한 식품이라고 할 때 빵은 그 정의에 들어맞는 가장 오래된 가공식품 중 하나다. 예부터 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 베이커리가 발달한 반면, 밥을 만들어 파는 가게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빵과 밥은 인류의 중요한 주식이지만 가공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빵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서양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서양화가들이 그린 빵 그림에서 그 유구한 역사와 애정을 자연스레 느껴진다.
<17세기 네들란드 화가 니콜라스 마스 Nicolas Maes, 1634~1693의 기도하는 할머니>
빵을 통해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찬양하는 모습은 19세기 스위스 화가 알베르트 앙커(Albert Samuel Anker, 1831~1910)의 그림 <커피와 빵, 감자가 있는 정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빵을 먹지 못해 떨쳐 일어선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베르사유 궁전으로 몰려간 여성 시위대다. 빵의 공급이 급속히 줄어들어 빵 값이 폭등하자 여인들은 "우리에거 빵을 달라!"며 과격한 시위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왕비가 세상물정을 모르는 여자인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혁명군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민중이 얼마나 도탄에 빠져 있었는지, 그리고 왕실은 그 상황에서 얼마나 무감각하고 무능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재미있게도 이때 왕비가 케이크라고 한 것은 요즘 우리가 먹는 케이크가 아니라 브리오슈라는 빵이었다고 한다. 루소의 <고백록>에도 농부들로부터 빵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공주가 자신이 먹던 브리오슈를 나눠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빵 대신 브리오슈'라는 말은 혁명 이전부터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는 정도 알려진 표현이다.
브리오슈를 그린 그림 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것이 샤르댕이 그린 <브리오슈>이다.
- 풍미 갤러리 - 지은이 문국진 이주현 - 발행처 이야기가있는집 - 초판1쇄 발행 2015년 11월 10일 - p124 ~ 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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