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밀보다 더 친숙한 것은 메밀이다. 메밀은 건조한 땅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잘 자라 어디에서든 쉽게 재배할 수 있다. 벼와 재배지가 겹치지 않고 오히려 산간에서 벼의 대체 작물로 기를 수 있으니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메밀'은 여러 모로 이상한 이름이다. '메밀'의 '메'는 '찰기가 없어서 메지다'는 뜻이니 '메밀'은 '밀은 밀인데 찰기가 없는 밀'이란 뜻이다. 그러나 밀과 메밀은 전혀 다른 종이다. 밀은 볏과에 속하고, 메밀은 마디풀과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더라도 꽃이나 생김을 보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본디 더 흔히 재배되는 것은 메밀인데 어찌하다 밀의 동생과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메밀'은 '모밀'이라고도 하는데 메밀 낟알이 모가 나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국수'는 麴讐(국수, 누룩 국 원수 수)'에서 온 것으로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누룩의 원수'란 뜻이다. 국수는 면麵(밀가루)으로 만든다. 면麵(밀)을 갈아 면麵(밀가루)을 만들고 나온 껍질을 밀기울이라 하는데 밀기울로 누룩(麴 누룩 국)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면麵(밀가루)이 귀해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든다. 메밀을 갈아 나오는 껍질로는 누룩을 만들지 못한다. 밀을 갈아야 누룩 만들 재료인 밀기울도 나올 것인데 밀 대신 메밀을 주로 가니 밀기울이 없어 누룩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누룩(麴 국)으로서는 메밀이 원수(讐 수) 이니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누룩의 원수, 곧 국수麴讐라 한 것이다. - 서유구, <옹희잡지>
실학자 서유구가 국수의 어원에 대해 쓴 글이다.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국수'의 어원을 한자어 '麴讐'에 갖다 붙인 것인데 전혀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밀', '밀가루', '국수'의 뜻으로 모두 쓰이는 한자 '면麵'은 본래 곡식 '밀'을 뜻한다. 그런데 밀은 통으로 먹기보다는 주로 가루를 낸 후 가공해서 먹으니 '면'은 '밀가루'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밀가루로 가장 많이 만드는 것이 국수니 '면'은 국수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점심은 면이 어떨까?'라는 말을 하면 누구나 국수를 먹자는 말로 알아듣는다.
- 우리 음식의 언어
- 한성우 지음
- 발행처 도서출판 어크로스
- 초판 5쇄 발행 2017년 7월 7일
- p77 ~ 78, p122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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