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메밀은 보통메밀(단메밀)과 달단메밀(쓴메밀)로 크게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재배한 것은 보통메밀이다. 중국의 윈난 성에서 티베트, 네팔로 이어지는 지역이 원산지임을 최근의 유전자 조사로 밝혀냈다. 메밀은 중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많이 나지만 일본이 최대 소비국이다. 일본에서는 메밀을 소바라 부른다.
메밀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6세기 전반의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이다. 우리나라에서 책에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36년 고려 고종 때 지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이다.
메밀의 어원을 언어학자들은 뫼와 밀의 합성어로, '산에서 나는 밀'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일부에서는 '모가 난 밀'이라는 의미로 메밀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주로 모밀이라 말이 메밀 대신에 사용되었다. 교맥이라는 한자나 소바의 고어인 소바무기가 '각진 밀'이라는 뜻임을 감안하면 '모가 난 밀'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18·19세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농업기술과 농지경영에 관해 지은 『행포지(杏蒲志, 1825)』에 메밀의 이름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 나온다.
"교맥(蕎麥)은 맥이 아닌데 맥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그 갈은 가루가 요기가 되는 것이 밀의 국수와 같기 때문이다. 줄기가 약하고 성장하기 쉽고 거두어들이기가 용이하여 교맥(蕎麥) 또는 교맥(荍麥)이라고도 한다."
(p74~76)
막국수를 논한 때 화전민(火田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와 함경도에 이르는 깊은 산속에 살던 화전민에게 메밀은 중요한 작물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산속으로 들어온 그들은 말 그대로 불을 놓아 나무와 풀을 태우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불이 휩쓸고 간 땅은 처음엔 기름지다. 수수, 밀, 보리 같은 작물이 첫 땅의 주인들이다. 그러나 몇년이 지나 양분이 사라진 땅에서 이런 작물은 자라지 못한다. 화전으로 일군 땅은 대개 6~7년이 지나면 작물이 자라지 않는데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물이 메밀이다. 메밀은 척박한 땅과 추운 기후에서 오히려 더 잘 자라고 생장 기간이 두달 정도로 짧아 기근이 닥치면 최고의 구황작물로 사람들을 지켜왔다.
춘천 지역의 화전민과 주민들은 메밀로 만든 국수를 '막국수'라 불렀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그냥 국수라 불렀다. 메밀면은 조선시대 내내 국수의 대명사였다. 지금이야 밀가루 면이 국수의 대명사지만 메밀국수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그래서 '국수'는 메밀국수를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냉면이 메밀로 만든 국수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막국수는 메밀의 특성상 손님이 오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방금'이라는 뜻의 '막'이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막'을 '마구'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방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문화적으로나 해석적으로 더 논리적이다.
화전민의 해체와 막국수의 대중화가 공교롭게도 맞물려 화전민의 음식이던 막국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1970년대 중반, 춘천은 소양강땜을 비롯해 몇 개의 땜이 건설되면서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저렴하고 맛있는 막국수는 배고픈 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춘천 주변의 군부대를 제대한 젋은 군인들이 가세해 막국수의 명성은 강원도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된다. 지금의 막국수 명가들이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이런 사회적 배경과 궤를 같이한다.
(p50~52)
- 음식강산 ②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
- 지은이 박정배
- 펴낸곳 (주)도서출판 한길사
- 제1판제1쇄 2013년 1월 30일
'조, 수수, 기장, 메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서에서 본 냉면 만드는 법 (0) | 2018.12.20 |
---|---|
[스크랩] [홍익희의 음식이야기] 강인한 생명력의 메밀로 만드는 평양냉면 (0) | 2018.05.04 |
장자가 언급한 커다란 창고 안의 좁쌀 (0) | 2015.03.26 |
한단지몽과 기장밥 익는 시간 (0) | 2014.12.28 |
녹비작물로서 메밀과 오방의 속살로서 다섯가지 성감대 (0) | 201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