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수수, 기장, 메밀

한단지몽과 기장밥 익는 시간

산들행 2014. 12. 28. 08:53

나는 알지, 나는 알지

손뻑치며 깔깔 한바탕 웃노라

고금의 잘난 이 모두 양(본질)을 잃었나니

시냇가에 초가 지어 사는 것만 못하리

험한 길에 발 붙이려 분주하다만

편히 앉아 아침 햇볕 쪼임만 못하리

인생 백년은 고작 기장밥 익는 시간

담소에도 뽕나무로 거북 삶는 걸 경계하니

백번 천번 잡념을 버림만 못하리라.

 

會也我會也(아회야아회야)

拍手呵笑一場(박수가가소일장)

古今願達俱亡羊(고금원달구망양)

不如結淸溪傍(불여결서청계방)

畏徐側足令人忙(외서측족령인망)

不如安坐曝朝陽(불여안좌폭조양)

百年熱黃梁(백년열황양)

談笑防龜桑(담소방귀상)

百了千當不如坐忘(백료천당불여좌망)

 

 

 

김시습의 학랑소(謔회롱거릴 학물결 랑 웃을 소)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생 백년 고작 기장밥 익는 시간"이라는 구절은 '한단지몽()' 이라는 사자성어에서 따온 내용이다. 한 젊은이(노생)가 어느 날 한단의 주막에서 졸다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높은 벼슬에도 오르고 결혼도 하고 장군도 되고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 보니 주막집 주인이 짓고 있던 기장밥이 아직 익지 않았다. 짧은 사람의 생에서 너무 많은 걸 하려고 욕심을 부린다는 걸 경계하는 내용이다.

"담소에도 뽕나무로 거북 삶는 걸 경계하니"는 입조심 하라는 의미이다. 한 효자가 아버지병을 고치기 위해 거북을 잡아 집으로 돌아가던중 뽕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거북이가 말하길 자신을 솥에 넣어 백년동안 고아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뽕나무가 자신을 베어 장작으로 만들어 불을 때면 삶아질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이 말을 들은 효자가 뽕나무를 베어 거북을 삶았다는 이야기이다. 뽕나무는 베어지고 거북은 삶아졌으니 입조심 하라는 경구이다.

 

- 인문학의 명강

- 심경호 : 천재의 광기, <매월당집> 과 <금오신화>

- 펴낸곳 (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 1판 12쇄 발행 2014년 2월 2일

- p367~368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한단지몽이란 인생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현종때 산동에 사는 노생이라는 사람이 어느날 한단 지방에 있는 주막에서 여옹이라는 도사를 만났다. 그는 여옹에게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면서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자기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청자베게를 꺼내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그만 잠이 들었다. 노생이 점점 커지는 베개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니, 대궐같은 커다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 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을 드높였으나 어느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는 몸이 되고 말았다. 노생은 포박을 당하여 끌려가며 "내 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더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로 나섰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 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하였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이 모든 것들이 모함임이 밝혀져 다시금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후 노생은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의 옆에는 여옹이 앉아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메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채 들지 않았을 정도의 아주 짧은 동안의 꿈이었던 것이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네" 라고 웃으며 말하였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체험을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던지게 해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 땅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