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상류층이 즐기던 냉면과는 달리, 막국수는 말 그대로 화전민들이 특별한 기술 없이 막 만들어 먹었던 대중적인 구황 식량이었다. 탈곡한 메밀을 멧돌에 갈아 만든 반죽을 구멍 뚫린 바가지에 넣고서는 꾹꾹 누를 때 나오는 국수 가락을 뜨거운 물에 떨어뜨렸다가 다시 찬물에 굳혀 만드는데, 정확한 유래와 역사를 알기 어렵다. 주 원료인 메밀은 척박하고 서늘한 산간 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두세달 정도면 수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림이 전체 면적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강원도에서 재배하기 좋은 곡식이다.
고려 고종 때 편찬된 《향약구급방》에는 메밀이 중국에서 전래된 사실과 효능 등을 처음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에는 북방의 여진족, 몽고족 또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약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급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밀 껍질에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매일 먹을 경우 중독증상을 보이고 기력이 쇠해진다는 주장이다. 특히 청나라가 조선을 초토화하고 지배권을 장악했던 1636년 병자호란 당시의 야설에 가까운 이야기가 매우 사실감 있게 전래되어 온다.
조선 국왕의 항복 선언까지 받아낸 청 태종은 조선인들을 고사시킬 궁리를 했다. 장안 최고의 의료진이 황명을 실천할 방법에 골몰했다. 급기야 이들은 메밀 껍질에 사람의 위를 깍아 내리는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선 천지에 메밀이 심어지고 막국수라는 음식이 생겨나는 데는 시간이 그다지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막국수를 즐겨 먹던 조선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한 청나라 사람들이 조사해보니 메밀에 독성이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조선인들이 슬기롭게도 이를 중화시키는 무와 배추를 곁들여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조선인 말려 죽이기'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청에 항복하는 것을 끝내 반대했던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삼학사'는 심양으로 끌려가 투옥된다. 갖은 협박과 회유가 통하지 않던 그들에게 연일 메밀 음식만 넣어준다. 이 음식만 먹이면 메밀의 독성이 쌓여 자연스럽게 죽어갈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감방 안을 샅샅이 뒤진다. 어떻게 반입되었는지 한구석에 먹고 남은 무 꼬리가 말라비틀어진 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결국 이들은 척화와 대의를 꺾지 않다가 심양 성문 밖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고 전한다.
실제로 메밀은 외부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껍질에 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이라는 독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극히 소량인 데다 도정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 먹는 무가 해독제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일본 음식 소바에 무즙을 넣는 것도 같은 이치다. 오히려 메밀은 다른 곡물들보다 성분과 유용성 면에서 뛰어난 작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특히 메밀의 건강성분 가운데 탁월한 것은 '비타민 p'로 불리는 '루틴'으로, 모세혈관을 튼튼히 하고 출혈을 막아 고혈압과 뇌졸증 등 혈관 질환에 효과적이라 한다.
-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지은이 홍인희
- 발행처 교보문고
- 2011년 5월 30일 초판 1쇄 발행
- p67 ~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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