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음주 자전거, 리어카 그리고 응급실에 관한 에피소드

산들행 2025. 2. 17. 10:07

직장 초년 시절의 나에겐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를 들려줄 참이다.

직장에 발령받은 초반에는 참 스트레스도 많고 고민도 많았다. 한때는 불면증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불면증은 술을 마시게 했고, 긴긴밤 음주 자징거를 타고 여기저기 동네 야간순찰 돌 듯이 돌아다녔다.

유성농고에서 대전 방향으로 4차선 도로 공사가 중단되어 울퉁불퉁 파인 도로가 있었다. 그 길을 지나가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움직이질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아는 사람이다. 술이야! 부어라! 마셔라! 하고 음주 오토바이 타고 귀가 중이었으리라. 오토바이는 앞뒤 빵구가 나 있고, 사람은 횡설수설이다.

 

그런데 그곳은 유성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아주 한적한 곳이라 택시도 없고, 핸드폰도 없다. 우짜지?

 

일단 자징거를 타고 그분이 사는 관사로 갔다. 오밤중에 관사를 뚜들겨 사모님을 깨우고 음주 사고 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이나 병원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이동 수단으로 눈에 뜨인 것이 리어카 이다.

 

자징거에 리어카를 달고 가는데, 자징거가 쌩쌩 잘 나간다. 뒤를 돌아보니 줄이 풀려서 리어카가 안 보인다. 다시 돌아가 리어카를 다시 단단히 붙들어 매고 사모님과 함께 사고 장소로 되돌아왔다. 리어카에 음주 부상자를 싣고 끌어서 큰 도로까지 갔고, 택시를 잡아타고 대전 성심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이래저래 조치하는데 입술이 찌져져 있다. 윗입술을 꿰매는데 아프다고 소릴 지른다. 술에 취해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마취가 되질 않는단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길래 한 대 줘팰려다가.... 그러길래 술을 좀 작작 마시고 댕기던가.... 참았다.

 

응급실에 대기하고 있으니 취기가 돌고 졸리고... 빈 침대가 보인다. 거기에 드러누우니 간호사가 소릴 지른다. ! 나도 힘들다고. 조금 쉬자는데 왜 소리 지를까? 좋은 일 하고 혼나고... 이번에도 참았다.

 

그날 야간순찰을 마저 다 돌았는지 생각나질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다.

 

가끔은 그분을 만난다. 꿰맨 입술은 흉하게 흉터로 남아있다. 겨울 논에 있는 볏짚에 불을 놓아 그게 번져서 남의 하우스를 다 태울뻔한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하다가 사모님이 나보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한단다. 그런데 동학사 근방의 땅 팔아서 돈 번 이야기만 하고 은혜를 갚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생명의 은인이었으니 먼가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보답 차원에서 먼가라도 준다고 각서라도 써 달랬더니 안 써준다. 원래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좋은 일을 했으려니 한다. 은혜를 갚을 줄 몰라도 내가 참고 이해해야지 우짜겠나.....

 

그 후로 어느 순간 불면증은 불현듯 사라졌다. 야간순찰도 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