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 이야기

대접해 달래서 대접에 주고 밥상 엎어진 에피소드

산들행 2025. 2. 17. 10:10

직장 초년 시절의 나에겐 남들이 갖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중 또 하나를 들려줄 참이다.

 

그때 그 시절에 이런저런 회식이 있었다. 회식은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하고 회포를 풀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교류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회식자리에서 술잔을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즉 후임이 선임들에게 먼저 술을 따르면서 예를 표한다. 되돌려주는 잔에 술을 따라주면 그 자리에서 원샷으로 마시는 방식이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 물이라도 받아 마셔야 했다. 삼겹살에 권커니 잣커니 술잔을 돌리면 목소리는 얼큰해지고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만약 술을 권하지 않으면 다음 날 너는 왜 술 안 따랐냐... 나한테 감정있냐.... 는 질책 같은 소릴 들어야 한다.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회식 자리에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 계장이 좋은 날 불편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평소에 조울증이 의심되는 분이었다. 다들 또 시작이다! 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에 모두 듣는 척 딴 척한다. 선배 알기를 개떡같이 안다고 말씀하신다. 선배를 잘 모시고, 대접에 소홀히 하지 않도록 잘하라는 일장 훈계도 들어야 했다. 삼겹살 먹어야 하는데, 일방적인 말씀이 계속 이어지니 분위기는 점점 더 화기애매 해졌다. ! 대접받고 싶으신가 보다.

 

옆에 앉아 있던 동료가 나한테 살며시 맥주병과 스텐 대접을 건네준다. 나는 생각도 없이 계장님! 제가 대접에 드리겠습니다!” 하고 무릎 꿇고 대접을 내밀며 맥주를 따를 자세를 취했다. 순간 그분은 벙찌더니 좌식 식탁을 뒤집어엎었고 화내면서 나갔다. 아쉽게도 맥주를 대접에 따라드리지 못했다. 대접 받길 원하시는데 미처 대접에 드리지 못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식탁을 정리하고 다시 술잔을 돌리며 삼겹살을 먹었다. 삼겹살은 맛있었고 술맛은 달콤했다. 취기가 오르는 만큼 분위기도 좋아졌다. 나는 해맑게 신났다.

 

한참 먹고 마시며 담소하는데 그분이 멋쩍은 표정으로 돌아오신다. 손에는 양주 한병이 들려있다. 쿨 하신 분이다. 막내인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나 양주를 따라드리며 앞으로 잘하겠습니다하고 술잔을 올렸다. 우리는 양주를 돌리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회식을 마쳤다.

 

혹시 대접받고 싶으신가요?

! 대접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