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흔적들

주정일의 청량산 산행기

산들행 2008. 6. 30. 20:13

주정일의 봉화 청량산 산행기

청량산은 ?

 

  봉화 청량산(淸凉山)은 태백산에서 갈려 나온 일월산의 서남쪽 24km 지점에 우뚝 솟은 신령한 산으로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 명호면 북곡리, 안동시 도산면, 예안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으며 도립 공원 지정 면적이 52.8㎢이다.

  6· 6봉(육육峰), 12대(臺), 8굴(屈)로 표현되는 바위산으로서 옛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낙타 혹 같은 봉이 연립, 그 기이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전남 영암의 월출산,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산의 암석은 퇴적암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량산엔 크고 작은 36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 중 큰 것만 12봉우리다. 이른바 육육봉이 바로 그것이다. 6· 6봉(육육峰)은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보이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지칭하는 말이다.


<12봉과 12대 그리고 8굴>

   ○ 12봉 :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륭봉

   ○ 12대 :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 8굴 : 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 4정 : 총명수(최치원이 마시고 총명해짐),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포


  흔히 사람들은 청량산을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입 다물고 나온다”고 말한다. 청량산의 수려한 경관에 놀라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나올 적엔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고 해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퇴계 이황도 도화가 이 곳에 무릉도원이 있음을 알릴까 걱정하기도 했다.

  청량사는 바위 봉우리 아래 가파른 비탈에 터를 잡았다. 소백산맥 청량산 연화봉 기슭, 이제 막 벙그는 연꽃 모양의 열두 봉우리 사이에 꼭꼭 숨은 천년 고찰 청량사! 청량산과 청량사는 김생과 길쌈녀, 최치원, 퇴계 이황, 주세붕, 그리고 공민왕등과 관련된 많은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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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청량산 도립공원 산행 안내도

 

 나는 ?

 

  청량산은 도립공원이다. 도립공원과 국립공원의 차이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의 차이일 뿐 도립공원이란 말은 청량산이 주는 경외감에 무색해진다. 청량산은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걸음을 멈출 수가 없고 그 수고로움이 숨어있는 절경으로 안내하여 경이로운 산 맛을 안겨 준다.

 

  청량산의 산행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산속 우거진 숲속을 걷다가 어려울 만 하면 산의 능선이다. 조금 올라가면 조금 내려오고 숲에 갇혔다가 시원한 전망대가 있는가 하면 근거리 풍경과 원거리 조망이 어우러져 있다. 오르다 자리를 펴면 그 자리가 쉬는 자리이고 전망 좋은 자리이며 꿀맛 같은 간식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자리이다.

 

  “경치 좋은 곳은 다 절이 들어 앉아 있다”는 두런두런 하는 말을 듣고 보니, 산이 안고 있는 전망 좋은 장소는 항상 사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찰이 있기에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오랜 역사의 사찰이 있기에 계룡산, 속리산의 봉우리 이름이 불교적인 용어이고, 청량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소 뜻을 가름하기 힘든 낯선 이름들이 봉우리마다 붙어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한 때는 의상봉과 보살봉으로 불리던 이름들이 다소 뜻을 알기 어려운 장인봉과 자소봉으로 바뀐 것은 무슨 연유일까?

 

  입석에서 출발하여 응진전, 어풍대로 가는 길은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이다. 나무줄기 사이로 어렴풋이 산의 모습을 가름할 수 있지만 일단은 시야가 가려져 있다. 세월을 담은 듯한 굵은 나무등치에 송진을 채취 당하느라 벗겨지고 상처 난 소나무가 안쓰럽다. 어렵지 않게 가는 산행 초입은 아쉬울 만하면 절벽위에 확 트인 조망을 형성하여 놓았는데 발 아래로는 낭떨어지다. 응진전과 금탑봉의 어울림은 경이로움이요, 어풍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조망과 청량사를 둘러싼 연꽃 같은 봉우리들의 울타리는 감탄의 연속이다. 이 두 곳에서 본 것들만으로도 청량산은 산이 주는 경외의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간직하게 한다.

 

  그러나 연꽃 속에 들어앉은 듯한 청량사와 바위틈에 자리잡은 나무와 어우러진 절벽의 풍경으로 청량산을 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봉우리 너머에 무수히 많은 봉우리 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우리들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진전과 어풍대에서 청량사와 청량산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대개 비슷비슷하다. 이는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의 세상에서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담아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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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어풍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너머로 멀리 보이는 향로봉

 

  김생과 길쌈녀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김생굴! 이미 총명했을 최치원의 총명수! 그러나 갈증으로 물을 마셔볼까 하는 마음은 금세 가신다. 물이 탁하기 때문이다. 결코 총명해 질 것 같지 않은 이 물을 누가 마실 것인가? 총명수의 설화만 간직한 채 떠나는 산행 길에서 가만히 되새겨 보니 총명수의 느낌이 새롭게 왔다. 총명수가 총명하게 보이면 그 물이 남아나겠는가? 공부하느라 필요했던 총명수가 이기심에 밝은 현대인에게 총명하게 살라고 깨우침을 줄 것인가? 총명수는 덜 총명한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는 물이기에 스스로 총명하다고 자부하는 현대인에게는 총명수가 탁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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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청량사를 둘러싼 봉우리로 된 울타리,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이 맨 위에 자그마하게 보인다.

 

 경일봉으로 오르는 길은 청량산의 암봉 종주길로 이어진다. 숨이 차올라 쉬엄쉬엄 올라야 하는 경일봉은 활엽수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나무숲에 오롯이 길을 내었고 정상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있게 하는 표지석이 있다. 경일봉에서 장인봉으로 가는 산길에서 왜 청량산인지 알게 된다.

 

  맑을 청(淸)자에 서늘할 량(涼)자를 쓴 청량산이란 이름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산임을 실감할 수 있는 능선길이다. 산을 오르느라 더워진 몸은 이 능선에 올라서면 청량한 바람에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된다. 경일봉에서 맞이한 청량한 바람이 이제부터 자소봉과 장인봉으로 길을 앞세운다. 경일봉에서 자소봉 가는 길은 산들바람 맞으며 콧노래와 함께 경쾌하게 걸을 수 있는 평이한 길에 가깝지만 나무며 바위며 산이 주는 조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소봉을 보기 위해서는 그 앞에 있는 가파른 봉 하나를 기어올라야 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봉우리에 그 흔한 줄타기도 없지만 손과 발에 온 몸을 의지하여 후들후들 기어오르면 자소봉이 바로 눈앞에 온전히 보인다. 그 곳에 서서 보살 같은 자소봉에 오르는 이들과 자소봉의 넓은 터에서 이리저리 조망하는 산객들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소봉에서 둘러보는 경치는 청량산에서 최고의 조망을 자랑한다.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모두가 아름답다. 하나의 봉우리에 서 있지만 청량사를 향한 풍경과 그 반대의 풍경은 서로 다르다. 이 곳과 저 곳, 가까이와 멀리를 조망하면서 청량산을 마음속에 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 왜 암자가 없을까? 이렇게 좋은 명당을 두고선........

 

 하늘로 솟은 자소봉을 지나 탁필봉 밑으로 해서 연적봉 정상를 지나면 지금까지 온 길보다 더 가파른 오름과 내림이 반복된다. 하늘다리로 가기 위해서다. 청량산의 명물은 봉화군이 자랑하는 “하늘다리”이다. 자란봉에서 선학봉을 연결해 주는 다리로서 길기도 길지만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며, 아주 커다란 고구마 모양의 바위를 기기묘묘하게 조각하여 세워 놓은 듯한 기암, 그 바위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 하늘다리에서 밑으로 보이는 밀림 같은 숲 그리고 멀리 축융봉이 주는 조망이 한참을 머무르게 한다. 자란봉에서는 선학봉이 주는 경치의 참맛을, 선학봉에서는 자란봉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비교할 수 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땀 흘린 대가로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머무르고, 조마조마 흔들흔들 건너고 나서는 다른 산객들이 건너는 표정을 관찰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러나 나는 다리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 산속 오지가 많은 봉화로서는 하늘이 그리울 법하지만 어찌 감히 하늘다리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있을까? 하늘다리란 이름으로 쉽게 각인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봉다리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아니면 봉봉다리!!!  봉에서 봉을 연결하였고 이 봉봉다리로 인하여 자란봉과 선학봉은 봉이 아닌 듯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봉이란 이름을 찾아 주어야 한다.

 

  하늘다리를 지나 가파른 오르내림과 급경사의 긴 철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장인봉에  다가갈 수 있다. 경일봉, 자소봉과 탁필봉이 오석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면 장인봉은 자연석으로 표지석을 세웠고, 다른 봉우리에 비하여 흙이 많은 육산의 봉우리다. 한때는 의상봉이라 불린 장인봉(丈人峯)! 무엇을 뜻하는 장인인지 모르겠지만 청량산의 전체 느낌과 장인봉의 느낌을 비교하여 보면 장인봉은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외톨이이고 오히려 뒷산에서나 있을 법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굳이 말한다면 장인이라는 남성적인 느낌보다는 장모라는 여성적인 느낌이 더 드는 봉우리이다. 안고 비비며 사진 찍기에 좋은 표지석도 둥글둥글한 것이 장모님의 체취를 보인다.

 

 전망대는 장인봉이 종점인 줄 알기에 나무에 가려 보이질 않아 놓치기 쉬운 구경거리이다. 전망대에서 보면 청량산에 들어올 때 봤던 학소대와 금강대가 바로 눈 밑으로 내려다보이고, 이 산과 저 산을 경계로 낙동강이 굽이져 유유히 흐르며, 멀리 산속에 밭들이 미끄러질 듯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보면 산속에 형성된 목가적인 마을과 밭들 이지만 그 마을에서 보면 청량산을 앞산 정원으로 하는 삶의 터전일지 모른다. 그 속에 누가 살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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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장인봉 지나 전망대에서 보는 조망과 낙동강


  능선 산행의 수고로움을 마무리하면서 한참을 머무른 후 전망대에서 장인봉으로 되돌아 나오면 연적고개나 뒤실고개에서 하산할 수 있다. 두들마을과 청량폭포로 갈 것인가, 청량사와 선학정으로 갈 것인가 하는 선택에 따라 하산지점이 달라진다. 사실 청량산에서의 산행은 항상 선택을 강요당한다. 즉 산행길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같은 산에서 등산로에 따라 헤어졌다가 만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것을 보며, 느낀 점 또한 다르다. 하지만 청량산은 청량산이다. 장인봉에서 다시 하늘다리를 건너고 뒤실고개에서 청량사 방향으로 하산하면 가파른 산중턱에 층층이 돌을 쌓고 자리 잡은 아담한 사찰을 만나게 된다. 금탑봉에 살포시 기대어 있는 응진전처럼 청량사는 청량산에 조용히 안겨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내려본 조망을 이제는 올려 보면서 산행하느라 지친 수고와 피로를 풀고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기서 청량산이 주는 경이로운 산 맛을 가슴속에 정리하면서 산행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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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금탑봉에 응진전과 어풍대가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