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일의 봉화 청량산 산행기
봉화 청량산(淸凉山)은 태백산에서 갈려 나온 일월산의 서남쪽 24km 지점에 우뚝 솟은 신령한 산으로 봉화군 재산면 남면리, 명호면 북곡리, 안동시 도산면, 예안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낙타 혹 같은 봉들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산으로, 전남 영암의 월출산, 경북 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奇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흔히 사람들은 청량산을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입 다물고 나온다”고 한다. 청량산의 수려한 경관에 놀라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나올 적엔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고 해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입석에서 출발하여 응진전, 어풍대로 가는 길은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이다. 나무줄기 사이로 어렴풋이 산의 모습을 가름할 수 있지만 일단은 시야가 가려져 있다. 세월을 담은 듯한 굵은 나무등치에 송진을 채취 당하느라 벗겨지고 상처 난 소나무가 안쓰럽다. 어렵지 않게 가는 산행 초입은 아쉬울 만하면 절벽위에 확 트인 조망을 형성하여 놓았는데 발 아래로는 낭떨어지다.
응진전과 금탑봉의 어울림은 경이로움이요, 어풍대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와 청량사를 둘러싼 연꽃 같은 봉우리들의 울타리는 감탄의 연속이다. 이 두 곳에서 본 것들만으로도 청량산은 산이 주는 경외의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간직하게 한다.
그러나 연꽃 속에 들어앉은 듯한 청량사와 바위틈에 자리잡은 나무와 어우러진 절벽의 풍경으로 청량산을 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봉우리 너머에 무수히 많은 봉우리 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우리들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경일봉으로 오르는 길은 청량산의 암봉 종주길로 이어진다. 숨이 차올라 쉬엄쉬엄 올라야 하는 경일봉은 활엽수와 소나무로 이루어진 나무숲에 오롯이 길을 내었고 정상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있게 하는 표지석이 있다.
경일봉에서 장인봉으로 가는 산길에서 왜 청량산인지 알게 된다. 맑을 청(淸)자에 서늘할 량(涼)자를 쓴 청량산이란 이름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산임을 실감할 수 있는 능선길이다. 산을 오르느라 더워진 몸은 이 능선에 올라서면 청량한 바람에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된다. 경일봉에서 맞이한 청량한 바람이 이제부터 자소봉과 장인봉으로 길을 앞세운다. 경일봉에서 자소봉 가는 길은 산들바람 맞으며 콧노래와 함께 경쾌하게 걸을 수 있는 평이한 길에 가깝지만 나무며 바위며 산이 주는 조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자소봉을 보기 위해서는 그 앞에 있는 가파른 봉 하나를 기어올라야 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봉우리에 그 흔한 줄타기도 없지만 손과 발에 온 몸을 의지하여 후들후들 기어오르면 자소봉이 바로 눈앞에 온전히 보인다. 그 곳에 서서 보살 같은 자소봉에 오르는 이들과 자소봉의 넓은 터에서 이리저리 조망하는 산객들을 구경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소봉에서 둘러보는 경치는 청량산에서 최고의 조망을 자랑한다.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모두가 아름답다.
하늘로 솟은 자소봉을 지나 탁필봉 밑으로 해서 연적봉 정상를 지나면 지금까지 온 길보다 더 가파른 오름과 내림이 반복된다. 하늘다리로 가기 위해서다. 청량산의 명물은 봉화군이 자랑하는 “하늘다리”이다. 자란봉에서 선학봉을 연결해 주는 다리로서 길기도 길지만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며, 아주 커다란 고구마 모양의 바위를 기기묘묘하게 조각하여 세워 놓은 듯한 기암, 그 바위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 하늘다리에서 밑으로 보이는 밀림 같은 숲 그리고 멀리 축융봉이 주는 조망이 한참을 머무르게 한다. 자란봉에서는 선학봉이 주는 경치의 참맛을, 선학봉에서는 자란봉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비교할 수 있다.
하늘다리를 지나 가파른 오르내림과 급경사의 긴 철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장인봉에 다가갈 수 있다. 경일봉, 자소봉과 탁필봉이 오석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면 장인봉은 자연석으로 표지석을 세웠고, 다른 봉우리에 비하여 흙이 많은 육산의 봉우리다. 한때는 의상봉이라 불린 장인봉(丈人峯)! 무엇을 뜻하는 장인인지 모르겠지만 청량산의 전체 느낌과 장인봉의 느낌을 비교하여 보면 장인봉은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외톨이이고 오히려 뒷산에서나 있을 법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능선 산행의 수고로움을 마무리하면서 한참을 머무른 후 전망대에서 장인봉으로 되돌아 나오면 연적고개나 뒤실고개에서 하산할 수 있다. 두들마을과 청량폭포로 갈 것인가, 청량사와 선학정으로 갈 것인가 하는 선택에 따라 하산지점이 달라진다. 사실 청량산에서의 산행은 항상 선택을 강요당한다. 즉 산행길은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같은 산에서 등산로에 따라 헤어졌다가 만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것을 보며, 느낀 점 또한 다르다. 하지만 청량산은 청량산이다. 장인봉에서 다시 하늘다리를 건너고 뒤실고개에서 청량사 방향으로 하산하면 가파른 산중턱에 층층이 돌을 쌓고 자리 잡은 아담한 사찰을 만나게 된다. 금탑봉에 살포시 기대어 있는 응진전처럼 청량사는 청량산에 조용히 안겨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내려본 조망을 이제는 올려 보면서 산행하느라 지친 수고와 피로를 풀고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여기서 청량산이 주는 경이로운 산 맛을 가슴속에 정리하면서 산행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2008. 9. 월간 MOUNTAIN, 독자산행기 p366 ~ 367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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