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제 때 불을 다스리던 관리가 죽어서 조왕신이 되었다.
- 『회남자 淮南子』 기론훈 紀論訓 -
조왕신은 상투를 틀었다.
- 『장자 莊子』 달생 達生 -
상투를 틀고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조왕신은 아름다운 여인을 닮았다.
- 사마표 司馬彪의 주 注 -
조왕신의 이름은 외이다. 미인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성은 장(張)이고 이름은 단(單)이며 자(字)는 자곽(子郭)이었다고 한다. 부인의 자는 경기(卿忌)이며 여섯 딸의 이름은 모두 찰(察)이었다.
- 『서양잡조 西陽雜俎』-
사람들은 향불을 피우며 조왕신을 모셨다. 조왕신은 한 집안의 평안을 돌볼 뿐 아니라 그 집안 사람들의 선악을 살펴서 잘잘못을 모두 옥황
상제에게 고해 바쳤다.
- 「경조전서」 진군권선문(眞君勸善文) -
섣달 스무사흘에 끈적끈적하고 차진 엿을 바치면 조왕신은 그 엿을 먹고 하늘에 오른다.
등불을 켜고 제사를 지내면서 갖가지 끈적끈적한 엿을 올렸다.
- 도함이래조야잡기道咸以來朝野雜記 -
건륭황제는 매년 12월 24일 밤이 되면 곤녕궁에서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정실 부뚜막에 미리 북과 박을 준비해 놓으면, 황후보다 나중에 도착한 황제가 부뚜막에 올라 북과 박을 두드리며 방현(訪賢)한 곡을 불렀다. 황후도 여기에 화답하였고, 빙 둘러 있던 집사관들도 고니처럼 고개를 처들고 발돋음하며 듣고 있었다. 노래를 다 부른 황제는 신을 보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궁으로 돌아왔다. 60년 동안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었다. 신주를 모시고 32종류나 되는 향과 폭죽을 준비하였으며 관례대로 황양(黃羊) 한 마리도 바쳤다.
- 청조야사대관淸朝野史大觀 -
조왕신은 한 집안의 먹을거리를 주관하고 가족들의 선악을 감시하는 가택신이었다. 비록 잡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봬도 한 집안의 주인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그 집안의 길흉화복과 재운은 모두 조왕신에게 달려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옥황상제에게 가족들의 선악을 낱낱이 고해 바치는 일까지 했으니 조왕신을 박대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게걸스럽게 먹고 욕심 사나운 조왕신도 청렴한 신령은 아닌 듯 하다. 1년 내내 향불을 피우며 지성으로 받들어 모셨건만, 그것으로는 만족 못하는지 매년 옥황상제에게 고해 바치러 가기 전에 한바탕 뇌물(엿, 금은괴, 조왕신이 타는 말등)을 받아 먹었다. 그야말로 탐관오리의 모습을 쏙 빼 닮지 않았는가?
- 밥그릇 투쟁사 - 텐위촨(田玉川) 지음/ 서야담 옮김 - p85 ~ 89 - 펴낸 곳 천케이 - 2008. 6.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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