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글 들

끼니

산들행 2010. 3. 7. 19:03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의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과 단절되어 있었다.

닥쳐오는 끼니를 피할 수도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쉴새없이 밀어 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항상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여서

다만 속수무책으로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계속 돌아왔고,

나는 먹었다.

나는 말없이 먹었다.

 

- 김훈 장편소설 

- 칼의 노래

- 펴낸곳 : 생각의 나무

- 개정판 25쇄 발행 : 2009년 7월 28일

- p 232~233

- 값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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