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들의 노래는 세계의 근본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노래가 “본풀이”이다.
본풀이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마침내 설명하고 거기에 언어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 노래는 신들의 노래가 아니라 인간의 노래다.
경북 지방 무당들의 본풀이는 흙의 근본을 이렇게 풀어낸다.
태초에 땅위의 세상은 진흙 뻘밭이었다.
하늘나라 공주가 가락지를 이 진흙 수렁에 떨어뜨렸다.
하느님은 남녀 한쌍을 이 세상으로 내려보내 가락지를 찾아오도록 했다.
남녀는 손으로 진흙 수렁을 주무르며 가락지를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
진흙 수렁 속에서 남녀는 정이 들어 사랑했다.
남녀는 하느님의 명을 배반하고 가락지 찾기를 집어치웠다.
남녀는 이 세상의 진흙 수렁에서 살기로 작정하고 결혼했다.
이 부부가 가락지를 찾기 위해 손바닥으로 주물렀던 진흙 수렁은 마른 흙이 되었고, 이 흙 속에서 풀과 곡식들이 돋아났다.
이것이 밭이다.”
이 노래의 전언은 선명하다.
흙과 밭은 사랑과 고난의 자리로서 인간에게 주어졌다.
이 흙은 하느님의 몫이 아니라 버림받은 인간의 몫이다.
한줌의 진흙은 손바닥으로 주물러야만 한줌의 경작지로 바뀐다.
하느님의 가락지는 진흙 속에서 숨어 있고 사람들이 그 가락지를 찾지 못해도,
이 사랑과 고난이 사람들을 그 땅에 붙잡아서 정주하게 한다.
- 자전거 여행 - 지은이 김훈 - 펴낸곳 생각의 나무 - 개정판 1쇄 2007. 6. 22 - p 31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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